Page 234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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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모습을 드러내면서 함께한 인류 공통의 원시 종교다. 인류는 끊임없는 자연재해와 재앙 및 위험
속에서 생존해 왔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왜소한 인간은 두려움뿐만 아니라 자연이 주는 생명
력에 외경심을 가졌다. 공동체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 인간은 우주 만물의 자연현상을 관찰하게 되
었고 자연 만물이 저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규칙 속에 있다는 것을 사시사철의 변함없
는 운행 등 자연현상을 관찰하여 통찰할 수 있었다. 47) 따라서 보이지 않는 절대자 또는 신이 존재
한다고 믿게 되었고 이 절대자에게 잘 보이거나 빌어 재앙을 막고 소원이 성취되면 신이 복을 내린
것으로 믿었다.
자연의 섭리에 특히 민감한 사람은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었고 절대자와 교통함으로써 절대자인
신의 대리인으로서 신을 부려 48) 공동체의 안녕과 개인의 문제를 풀어주었다. 이 사람이 무당, 선
인이었다. 대표 선도 사서로 꼽히는 『단군세기』 에는 공동체의 지도자요 제사장으로서 단군이 삼
신, 천신에게 굿을 올리고 빌었는데 49) 목적은 공동체의 안녕을 바라는 것이었다. 단군은 산신이
이었고 50) 또 선인이었다. 51)
또 신라 왕, 차차웅이 무당이었다는 것이 『삼국사기』에도 보인다. 52) 단군조선의 선도를 이은 신
라 53) 의 왕, 차차웅은 귀신을 섬길 뿐만 아니라 늘 제사(굿)를 하였다. 이는 전형적인 무당의 모습이
다. 선도가 무교와 직접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김유신의 선도 수련 과정에서 나타나는 神異한 현상
이 말해준다. 54)
김유신이 적을 물리치게 해달라고 산에 들어가 향을 사르고 하늘에 기도하였는데 寶劍에 신령이
내렸고 3일째 되던 밤에는 별빛이 劍에 스며들어 검이 요동쳤다는 내용이다. 핵심은 신이 내렸다
는 것으로 무당이 신을 불러 신이 내린 것과 본질에서 같다. 무당 굿에서 사슬 세우기가 있는데 삼
부린다. 본 연구에서는 무교와 같은 개념으로 무당, 무당 굿, 무속 용어를 병행해서 사용하였다.
47) 최제우, 『동경대전』 「포덕문」 「논학문」
48) 환웅천왕은 도를 닦아 선인이 되었는데 그에 앞서 천신에게 굿을 하였고, 괘를 그리고 상을 잡으며 신을부렸다(立都
神市國稱培達擇三七日祭天神忌愼外物閉門自修呪願有功服藥成仙劃卦知來執象運神『안함로 삼성기』). 오늘날 무당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중국 시조 삼황 중의 대표격인 황제헌원도 신시 배달국의 청구국 선인, 자부선생에게서 삼황
내문을 받아가서 만신을 불러냈다(昔黃帝東到青丘,過風山,見紫府先生,受三皇內文,以劾召萬神『抱朴子/內篇 /地
真』). 만신을 불러냈다는 것은 무당이었다는 얘기다.
49) “戊戌二十八年會九桓諸汗于寧古塔祭三神上帝”, “神市以來每當祭天國中大會”, “十月北巡而回到太白山祭三神”
50) “後還隱於阿斯達爲山神, 壽一千九百八歲(『삼국유사』 「일연의 삼성기」).”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숨어들어 산신이
되었다고 하였고 수명이 1908세라고 한 것에서 한국 선도의 전형인 장생불사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51) “二十一年 春二月 王以丸都城經亂 不可復都 築平壤城 移民及廟社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삼국사기』 「고구려 본
기」) 평양은 단군조선의 도읍지다(『삼국유사』 「일연의 삼성기」). 선인왕검은 단군왕검을 뜻한다.
52) “南解次次雄立 (次次雄 或云慈充 金大問云 方言謂巫也 世人以 巫事鬼神 尙祭祀 故畏敬之 遂稱尊長者 爲慈充(『삼국사
기』 「신라본기」).”
53) “國號徐那伐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爲六村(『삼국사기』 「신라 본기」)” 신라는 6촌이 토대가 되어 생겨났는데
그 6촌이 조선의 유민이라고 하였다. 유민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온[流] 사람이 아니라 현지에 남겨진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遺]. 이는 단군조선이 문을 닫자 현지에 남아있는 백성들, 다시 말해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경주 지역의 단군조선
백성이라는 뜻이다.
54) “建福二十九年 鄰賊轉迫 公愈激壯心 獨携寶劍 入咽薄山深壑之中 燒香告天 祈祝若在中嶽 誓辭仍禱 天官垂光 降靈於
寶劍 三日夜 虛角二星光芒赫然下垂 劍若動搖然(『삼국사기』 「열전」 김유신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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