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5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P. 235
한국 선도와 수운 최제우의 무극대도 오종홍
지창에 돼지를 꽂아 세워 쓰러지지 않고 서 있으면 신이 내린 것으로 안다. 김유신의 보검에 신령이
내려 흔들렸다는 이야기와 본질에서 다르지 않다.
도교 사상이 보이지만 한국 고유 선도의 발현이라고 평가되는 증산교의 강증산도 무당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상제께서 하루는 무당 도수라 하시며 고부인(古夫人)에게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치시
며 「이것이 천지(天地) 굿이니라」 하시고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요 나는 천하 일등 재인이라
이 당 저 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서 빌어야 살리라」” 55)
“무당의 집에 가 빌어야 살리라.” 56)
“屠漢과 巫堂에게 천하게 대우하지 말라” 57)
강증산은 단순히 무당을 우리 전통문화로 존중한다는 의미로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니다. 강증
산 본인이 무교에서 행하는 소원 글을 종이에 적어 불태우는 燒紙 행위를 수시로 하였다. 58) 이는
무교의 핵심인 주술행위이다. 또 본인이 천하 일등 재인才人이라고 하여 증산 자신을 무당 굿의
한 축으로 보았다. 재인은 무당 굿에서 악기를 연주하여 무당에게 신이 내리는 것을 돕는다. 무당
굿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무당은 무교의 사제이며 무교는 상고시대의 신도(神道)다. 59) 강증산은 득도한 뒤에 “첫 法音을
무당 6명을 불러 전하였다.” 60) 이를 통해서도 무당과 선도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한국 선도의 기원으로 알려진 마고 선인의 『부도지』에는 황궁씨가 파괴된 마고성의 회복을 맹세
하고 白茅 61) 를 묶어 마고 신에게 빌었다. 여기서 백모는 “강신할 때 띠를 묶어서 모래를 담은 그릇
에 꽂는 예법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62) 이 시기는 환인 시대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오늘날 무당이
신에게 비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선도로서의 무교는 신과 교통하는 모습 이외에 인간이 고통을 받는 것은 외부원인도 있지만 욕
심과 집착 시비 다툼하는 등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자각하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추구
하는 정신의 진화로 나아갔다. 신은 고통 속의 인간상과 반대이므로 신이 내리면 욕심과 번뇌로
가득찬 마음은 물러나고 신이 대신 차지함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 청정하고 고요하여 자연과 하
55) 대순진리회 교무부 편집, 『典經』, 대순진리회출판부, 2010, 145쪽.
56) 『大巡典經』 4-6(송호수, 「단군사상과 동학-민족정통사상의 고찰-」, 『국조단군』 제1집, 사림원, 사단법인 단군정
신선양회, 1986, 136쪽에서 재인용)
57) 『大巡典經』 6-16, 재인용은 위와 같음
58) 위 『典經』
59) 위 송호수 『국조단군』 제1집, 136쪽.
60) 위와 같음.
61) 茅 “띠 모 【명사】 강신(降神)할 때 모삿(茅沙)그릇에 꽂는 띠나 솔잎의 묶음(2018 한컴 한자 사전).”
62) 박제상 지음, 김은수 번역 주해, 『부도지』, ㈜한문화 멀티미디어, 2003, 41쪽.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