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0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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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국가 민족 공동체의 공익을 지향하고 있다. 선인이자 무당인 환웅천왕과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

                 내고 복을 비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삼국시대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에는 불교의 옷을 입었으나
                 사실은 선인인 원효대사나 지눌 대사, 서산대사가 개인 득도를 넘어 속세에 뛰어들어 중생구제에

                 나서거나 전쟁에 나가 싸우는 호국불교의 모습에서 한국 선도의 공공성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한국
                 선도 사상의 중핵인 弘益人間과 接化群生은 나[個我]를 넘어 인간과 동물 및 무생물에까지 공공성

                 이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도교와 한국 선도가 주문           28) 과 부적사용, 신에게 빌고 신이 내리는 등 거의 같다고 할 수

                 있으나 개인성이냐 공공성이냐에서 중국의 도교와 한국의 선도가 갈린다.



                     4. 중국 도교의 기원



                   중국 도교가 오늘날과 같이 도가 사상을 바탕에 깔고 양생과 신선을 추구하고 元始天尊, 靈寶天

                 尊, 道德天尊, 玉皇大帝 등의 신을 섬기는 교단을 갖춘 종교 형태를 띤 것은 후한(동한) 말기인 서기
                 2세기 초 張陵(?~117)이 창설한 오두미두            29) 와 같은 시기인 張角(?~184)이 창건한 태평도에 의해

                 서다.  30)  이것이 흔히 말하는 도교다. 이전에는 도교라기 보다는 노장 사상으로 남아 있거나 신선
                 술을 추구하는 하나의 흐름 정도였다. 대략 서기전 3세기경 전국시대에 북경지역의 燕나라, 산동

                 성의 齊나라에서 신선방술을 추구하는 집단의 흐름이 있었다.
                   이 지역은 신선도의 고향인 동이족의 요동과 한반도와 인접해 있다. 또한 “신선이 있고 불사약이

                 있다는 삼신산은 이 지역에서 멀지 않은 ‘渤海 中’에 있다”                  31) 는 기록이 중국 사마천의 『사기』에 보
                 인다.



                    “이미 제나라 사람 서불 등이 글을 올려 말하길, 바다 가운데 삼신산이 있는데 봉래, 방장, 영주

                    라고 하며 신선들이 거기에 살고 있습니다. 청하건데, 제계를 하고 어린 남녀를 데리고 그것을



                 28) [주문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은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주문이라 무엇인가? 주문은 영어로 ‘만트라mantra’라고
                 한다. 만트라의 ‘만man’은 산스크리트어로 ‘생각하다’라는 뜻이다. ‘트라’는 ‘트라이trai’에서 왔는데, ‘보호하다’ 또
                 는 ‘속박에서 자유로워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문을 소리 내어 외우는 것을 서양에서는 만트라챈팅mantra
                 chanting이라고 하였다. “챈트는 ‘구호를 거듭 외친다’는 뜻”인데 “우주의 음악이며 우리 의식의 자연스러운 표현”이
                 다. “주문 수행을 할 때 성스러운 마음으로 정성껏 주문을 소리를 내어 읽으면 소리가 신성한 조화의 힘을 발동시킨다.”
                 이때 소리는 “영적 세계와 물질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라고 고도” 하며 “인간과 신의 세계를 이어주는 고리로” 알려져
                 있다(안경전 역주, 『桓檀古記』, 상생출판, 2012, 592쪽, 592쪽).”).] 이상은 오종홍, 「불택선악으로 본 수운 최제우의
                 하날님」,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22, 84쪽에서 재인용.
                 29) “오두미도라는 명칭은 입교자로부터 쌀 5말씩을 받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장릉이 죽은 뒤 손자인 장로(張魯)
                 가 뒤를 이어 오두미도의 교법과 조직을 완성시켰다.(한족민족문화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
                 ts/Item/E0038179).”
                 30) 위 금선학회편저, 200~202쪽.
                 31) 도광순 편저, 『神仙思想과 道敎』, 범우사, 1994,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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