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6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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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다. 특히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에 나오는 玄妙현묘한 도인 풍류도와 비교하여 동학이 선도에 토대
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수운이 자신의 도가 유, 불, 선의 도를 겸하여 나왔다는 말에 주목하여
이 말이 최치원이 풍류도가 유, 불, 선 3개의 교를 포함한다는 말과 같다고 평가하였다.
풍류도는 선도를 말하는 것이고 현묘한 도인데 수운이 자신의 도를 玄機라고 한 것과 연결시켜
수운의 무극대도가 현묘지도에 해당하고 선도라는 것이다. 그는 수운이 사용한 선도 용어가 중국
의 도교와 같다고 보면서도 이 용어들이 중국 도교를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현실을 설명
하는 한국 선도를 지향하였다고 분석하였다. 예를 들어 수운이 지상신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수려한 외적 용모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도교에서 말하는 지상신선도 아니고, 수운이 강조한 개벽
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될 이상적 인간상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시천주를 깨달아 한울님
의 덕과 일치하는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의 삶을 향유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도교의 신
선처럼 출세간이 아니라 지극히 입세간적 표현이다.” 10) 라고 평가하였다.
김대훈의 이 같은 관점은 수운의 무극대도가 중국 도교에 터 잡은 것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선도
로 보았다는 점에서 수운의 도를 바르게 평가하였다.
다만 수운의 무극대도를 최치원의 玄妙之道와 包含三敎의 틀에서만 바라보고 한국 선도 전체를
조망하여 입체적으로 수운의 도가 한국 선도를 이었다는 점을 부각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더
구나 수운의 도가 천지와 더불어 한알님의 덕에 합한다고만 하였지 이 말이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
인지 밝히지 않아 피상적인 분석에 그쳤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동학은 수운이 창건한
것이지 해월 최시형이나 의암 손병희가 아니다. 이들의 사상과 수운의 도가 같다고 하려면 동학의
중핵인 수운과 같은 종교체험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해월과 의암에게서 수운과 같은 전면적이
고 전일적인 죽음과도 같은 강력한 종교체험은 보이지 않는다.
해월과 의암 사상을 분석한 연구성과들은 대체로 해월과 의암의 사상은 수운의 무극대도와는
다르다는 견해를 보인다. 따라서 해월과 의암의 주장을 수운의 주장과 같은 반열에 놓고 동학이
선도를 계승하였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분석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김대훈 외에 안창범도 동학이 한국 고유의 신선도(선도)에서 기원했다는 주장을 펼쳤다. 경주
용담정의 용담이 백두산의 천지 용담을 암시한다고 하였고 백두산은 환웅천왕이 내린 곳이라는
점, 해월 최시형과 의암 손병희의 의견, 그리고 고운 최치원의 난랑비서문을 통해서 풍류도를 전한
고운 최치원이 수운의 직계 조상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11)
하지만 용담을 백두산 천지 용담으로 추정을 한다는 점과 동학을 창건한 수운의 사상이 아닌 해
월과 의암의 의견을 가지고 신선도를 계승하였다고 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이에 비해 본 연구는 한국 선도의 기원이라고 평가되는 마고 선인에서부터 시작한다. 또한 한국
선도철학을 풍부하게 전하는 『안함로 삼성기』, 『원중동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
10) 위 논문, 361쪽.
11) 安昶範, 『神仙道와 東學의 起源』, 동학학보 제1호, 동학학회, 2000, 215~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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