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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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이라 하겠다.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 무욕(無欲)과 ‘박실자연’은 다른 것이 아니다. 38) 도가사상의 핵심은
‘포박(抱樸)’에 있다. 이 ‘포박’은 ‘무위자연’과 같은 의미이다. ‘박실자연’ 사상은 노자사상의 중핵
이다. 39) 최치원이 도가의 핵심 개념을 ‘박’으로 파악한 것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노자의 ‘박실’ 사상이 중국 은나라 시기에 지금의 요동(遼東)
지방에 있었던 청구국에서 배태(胚胎)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오래 된 기록으로 『산
해경』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청구의 나라에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九尾狐〕가 있고 성품이 부드럽고 순박한〔柔樸〕 백성
이 있다. 이곳은 영토(嬴土)의 나라다. 40)
종래 위서(僞書) 시비가 있었던 『산해경』이 20세기에 갑골학 연구의 성과 등에 힘입어 그 가치가
새롭게 인정되고 있다. 위의 청구국 기사와 관련하여 중국의 학자 부사년(傅斯年: 1896~1950)의
연구에 의하면, 춘추 전국시대에 지금의 남만주 지역에 살던 동부족들은 그 조상이 대부분 영성(嬴
姓)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담(郯)·거(莒)·엄(奄)·서(徐)·강(江)·황(黃)·조(趙)·진(秦)·양(梁)·갈
(葛)·토(菟)·구(裘)·비(費) 씨 등이 ‘영성’의 후예라고 한다. 41) 이로써 청구국이 영토(嬴土)의 나라
임이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청구국의 위치는 어디쯤이었을까? 중국 후한 영제(靈帝) 때의 학자 복건(服虔)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부(子虛賦)」에 보면 “가을에 청구 지방에서 사냥을 하였
다” 42) 는 말이 있는데, 동주(同注)에서는 복건의 말을 인용하여 “청구국은 해동(海東) 3백리 지점에
있다” 43) 고 하였다. 근세의 이능화(李能和: 1869~1943)는 청구국이 요동 지방에 자리 잡았던 고
국(故國)임을 주장하였다. 44) 류승국 교수는 군자국과 청구국의 위치에 대해 논하면서, 군자국은
한반도에 위치하고 청구국은 요동지방에 있다고 고증하였다. 45) 『산해경』에서 각기 따로 설명한
것은 이런 까닭이라고 하였다. 46)
중국 측 역사서에 따르면 동이족은 예부터 천성이 유순하다고 하였다. 청구국 사람들의 성품을
37) 『노자』, 제32장 “道常無名, 樸.” ; 제37장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38) 『노자』, 제57장 “我無欲而民自樸.”
39) 류승국, 『도원철학산고』,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0, 88쪽.
40) 『산해경』, 「대황동경(大荒東經)」 “有靑邱之國, 有狐九尾, 有柔樸民, 是維嬴土之國.”
41) 부사년(傅斯年), 「이하동서설(夷夏東西說)」, 『慶祝蔡元培先生六十五歲論文集』 下冊, 1931, 1117-1129쪽 참조.
42) 『문선(文選)』 권7, 사마상여(司馬相如), 〈자허부(子虛賦)〉 참조. 청나라 때 고조우(顧祖禹)가 펴낸 『독사방여기요
(讀史方輿紀要)』의 〈산동 청주부 낙안현(山東靑州府樂安縣)〉 조에서도 “靑丘在縣北, 相傳齊景公, 嘗畋於此”라 하였다.
43) 위와 같음 “服虔曰, 靑丘國, 在海東三百里.”
44) 이능화, 『조선도교사』, 이종은(역), 보성문화사, 1982, 47-48쪽.
45) 류승국, 『한국사상의 연원과 역사적 전망』, 73쪽 참조.
46) 류승국, 위의 책, 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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