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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신라의 별칭이 ‘시라’(Sila)      32) 이고 또한 ‘가야’라는 산 이름이 있어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신라는 참으로 선택받은 땅이오, 그 이름에 걸맞게 불교가 융성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 역시 그의 독특한 동인의식이요 불국토사상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한편, 최치원의 「지증대사비명」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끈다.



                    …… 선원사(禪院寺)에서 휴식을 하게 되자, 편안히 이틀 동안을 묵게 한 뒤 (왕은 지증대사를) 인
                    도하여 월지궁(月池宮)에서 ‘심(心)’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그 때는 가느다란 담쟁이덩쿨〔蔦

                    蘿〕에 바람 한 점 불지 않았고 온실수(溫室樹: 온실전)에 바야흐로 밤이 될 무렵이었다. 마침 달
                    〔金波〕 그림자가 못(月池) 가운데 똑바로 비친 것을 보고는, 대사가 고개를 숙여 유심히 살피다

                    가 다시 하늘을 우러러보고 말하기를 “이것(水月)이 이것(心)이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고
                    하였다. 임금께서 상쾌한 듯 흔연히 계합(契合)하고 말씀하시기를 “부처가 연꽃을 들어 뜻을 나

                    타냈거니와, 전해지는 유풍여류(遺風餘流)가 진실로 이에 합치되는구려”라고 하였으며, 드디
                    어 제배(除拜)하여 망언사(忘言師)로 삼았다.              33)



                   헌강왕은 유명한 염화시중(拈花示衆)의 고사를 이끌어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이심전심(以心傳

                 心)의 가르침을 설파한 뒤, 불언(不言)-망언(忘言)-무언(無言)이 우리나라의 사상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였다. 헌강왕이 말한 ‘소전풍류(所傳風流)’는 바로 풍류도의 전통이다. 「난랑비서」에

                 서 ‘처무위지사(處無爲之事), 행불언지교(行不言之敎)’ 운운한 바로 그것이다. ‘불언의 가르침을 행
                 하는 것’은 노자가 한 말이지만, 선종(禪宗)에서 중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선종과 노장사상의 관계

                 는 매우 밀접하다. 선종을 가리켜 ‘불교의 노장적(老莊的) 전변(轉變)’이라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최치원이 선사의 비문에서 ‘불언의 가르침’을 말하면서, 이것을 재래의 사상 전통에 부합한 것이

                 라고 한 점은 매우 중요한 시사다. 당시 지성인 사회의 일반적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3. 청구국 유박사상(柔樸思想)과 도선가의 원류




                   종래 우리나라 도교사서들은 한결같이 고유의 선파(仙派), 선맥(仙脈)의 존재를 기술하였다. 최
                 치원은 단군을 정점(頂點)으로 한 고유의 선맥을 계승한 중추적 인물로 받들어졌다. 최치원이 이

                 선맥의 존재를 인정한 것은 「난랑비서」에서 “풍류도를 베푼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32) ‘시라(尸羅)’는 청량(淸凉) 또는 계율(戒律)이라 번역됨. 육바라밀(六婆羅蜜)의 하나.
                 33) 『역주 최치원전집』 1, 282-283쪽, 「지증대사비명」 “至憩足于禪院寺, 錫安信宿, 引問心于月池宮. 時屬纖蘿不風,
                 溫樹方夜. 適覩金波之影, 端臨玉沼之心. 大師俯而覬, 仰而告曰: 「是卽是, 餘無言」 上洗然忻契曰: 「金仙花目, 所傳風流,
                 固協於此」 遂拜爲忘言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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