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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최영성
불교의 자비정신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어진 성품을 결부시켜, 신라에서 불교가 성행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보았다. 이런 인식은 풍류도 해석과 직결되는 문제로서, 불교를
우리의 사상이나 종교로 인식하려는 주체적인 태도와 ‘불교 토착화’에 대한 신념으로 연결되었다.
이것은 그의 동인의식 안에 무르녹아 있다.
최치원은 마한(馬韓)으로부터 내려온 소도(蘇塗: 수두)의 의식을 불교 의식에 견주었다. 더 나아
가 불교의 묘맥(苗脈), 아니 불교의 근원이 동방의 나라 신라에 있다고 보았다.
옛날 우리나라가 셋으로 나뉘어 솥발〔鼎足〕처럼 서로 대치하였을 때 백제에 소도(蘇塗)의 의식
이 있었다. 이는 감천궁(甘泉宮)에서 금인(金人: 부처)에게 제사지낸 것과 같았다. 28)
가비라위(迦毘羅衛: 석가모니 탄생지)의 부처님은 해돋는 곳에서 태양처럼 받드는 분! 서방(西
土)에서 존재를 드러내셨지만 사실은 동방에서 나오신 분이라네. 29)
서방에서 종교적 형태로 완성된 불교에 앞서 동방 신라의 사상과 의식 속에 이미 불교의 묘맥(苗
脈)이 있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불교의 근원은 전불시대의 신라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논
리다.
신라에 불국토사상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대개 자장(慈藏)에 이르러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불국토사상은 신라에서 불법을 널리 전파하는 데 지대한 구실을 하였다. 최치원 역시 나름대로 일
정한 논리에 입각하여, 신라가 장차 불국정토(佛國淨土)를 이루게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보였
다. 그는 「해인사 결계량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경(大經: 화엄경)에 이르기를 “입세간(入世間)이나 출세간(出世間)이나 할 것 없이 여러 선근
(善根)은 모두 가장 좋은 의미〔最勝義〕인 시라지(尸羅地)에 의지하라!”고 하였다. 지명(地名)
이 서로 들어맞음을 천어(天語: 天竺語)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나라 이름이 ‘시라(尸羅)’이니 파
라제(波羅提: 계율)로 불법을 일으킬 곳임에 분명하고, 산 이름을 ‘가야(迦耶)’라 하였으니 석가
모니가 도를 이룬 곳과 같다. 30)
이름이란 실없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이치를 따져 보면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31)
28) 『역주 최치원전집』 1, 261쪽, 「지증대사비명」 “昔當東表鼎峙之秋, 有百濟蘇塗之儀, 若甘泉金人之祀.”
29) 『역주 최치원전집』 1, 221쪽, 「대숭복사비명」 “迦衛慈王, 嵎夷太陽. 顯于西土, 出自東方.”
30) 『역주 최치원전집』 2, 306쪽, 「迦耶山海印寺結界場記」 “大經曰: 「世及出世, 諸善根, 皆依最勝尸羅地」 然則地名相
協, 天語可尋. 國號尸羅, 實波羅提興法之處, 山稱伽倻, 同釋迦文成道之所.”
31) 『역주 최치원전집』 2, 296쪽, 「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 “名非虛設, 理必有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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