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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최영성
교에서 이상시하는 것들이다. 특히 ‘호양’의 미덕이야말로 ‘군자국’이라는 일컬음을 받는 데 적절
한 것이라 하겠다.
공자사상의 중심은 ‘인’사상이요 인(仁)의 원형은 인(人)에서 유래하였다. 동방 사람의 어진 성
품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다. 갑골문에 보면 ‘동인(東人)’이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지금으로부터
3천 여년 전 중국 청동기시대 금문(金文)을 보면 ‘동이(東夷)’라 하지 않고 ‘동인(東人)’이라 하였다.
‘이(夷)’란 명칭은 주(周)나라 후기 이후에 나온 것이요, 본래는 ‘인(人)’이었다. 기원전 1330년 무
렵의 갑골문을 보면 동방족을 의미하는 인방을 ‘人’ 자로만 표시하였다. ‘인방족’이라는 고유명사
다. 인방족은 예의와 교양 있는 부족으로서 문화적으로 중국보다 선진(先進)이었으므로, 중국에서
뒷날 ‘人’ 자를 차용하여 인류라고 했다는 주장이 통설처럼 되어 있다. 24) 갑골학자 동작빈(董作賓:
1895∼1963)은 ‘人’ 자와 ‘仁’ 자와 ‘夷’ 자는 연원적으로 같은 글자이며, 동부족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25)
‘인(仁)’보다 ‘인(人)’이 선행하였고, 또 인방(人方) 문화가 유교사상의 선하(先河)를 이루었다
고 할 때, ‘인(仁)’의 원류(源流)는 인방 문화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류승국 교수는 갑골
문 자료에 대한 연찬(硏鑽)을 바탕으로 유교사상이 역사적으로 인방족(人方族)과의 관계에서 이
루어졌음을 논증하고 유교사상의 형성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동이족과의 관계를 떼어놓고 설명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26) 또 역사적으로 중국 상고대로 멀리 거슬러 올라갈수록 동이문화권
이 문화적 선진으로서 중국에 영향을 끼쳤다고 하였다. 이처럼 한국은 유교의 연원이 되는 나라
로 중국에서 유교가 집대성되기 이전부터 유교의 토양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공자가 유
교를 집대성한 이후 오경(五經) 중심의 유교사상이 다시 우리나라에 전해져 성행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치원이 유교의 근본사상을 ‘인(仁)’으로 보고 ‘인’을 동방 사람들의 유순한 성품에 견주었던
것은, 바로 우리나라가 유교의 근원이었음을 상징적으로 시사하는 바라 하겠다. 그가 「지증대사
비」에서 “동방의 제후국으로 우리보다 위대한 나라는 없다. 지령(地靈)이 이미 살리기를 좋아하는
것〔好生〕으로 근본을 삼았을 뿐만 아니라, 풍속 또한 서로 양보하는 것〔互讓〕을 우선으로 삼았음
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희희(熙熙)한 태평의 봄날이요 은은(隱隱)한 상고의 교화이다”라고 한
것은 인간존중의 사상, 더 나아가 인도주의 사상의 원류와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의 원형이 동방
군자국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24) 노간(勞榦), 『中國文化論集』 2, 臺灣: 中華大典編印會, 1965, 394쪽 “我們常常把東方的人稱爲東夷, 而夷字和仁字
是通用的, 仁字和人字也是出於一源. 那麽漢語中 ‘人’ 的稱謂, 甚至於還有出於東方的可能. ⋯⋯ 假若夷人先成文化的先
進, 夷人先用了人字, 作爲全人類的名類, 西方後起的部族, 可能再爲借用的.”
25) 동작빈(董作賓), 『甲骨文斷代硏究』, 1932, 51쪽.
26) 류승국, 『한국사상의 연원과 역사적 전망』, 24-90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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