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1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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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사암각화에 반영된 공동체 의식 박선식
4) 대곡리 암각화의 인물도상으로 읽는 다양한 분위기
울주 대곡리 암각화의 주암면에서 가장 윗부분에 해당하는 부위에는 홀로 춤을 추는 듯한 인물도
상이 확인된다. 이 인물은 머리에 모자를 썼는데 그 끝이 길쭉하여 시초구성과정에서 확인한 일부
인물도상의 모자와 유사성을 느끼게 된다. 어떻든 춤추는 듯이 보이는 한 인물은 오른 손은 머리쪽
가까이 향하고 있고, 왼손은 허리춤의 가까이로 내려져 있다. 이 인물도상을 통해 읽어낼 수 있는
점은 이행구성 2과정의 시기에 생업양상이 해양과 육지 양방면에서 활발해지면서 식료자원에 대한
공포가 과거에 비해 심각한 단계는 벗어났기에 소박한 춤사위를 구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뿐더러 向우측방으로 멀리 바다로 떠나는 어로작업선에 승선한 이들에게 어로의 성공과 무사귀환
을 기원하고자 제의적 의미를 반영하여 드러낸 춤사위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고 여겨진다.
한편 이행구성 2과정에서 이미 시초구성과정에서 확인된 긴 물체를 입에 댄 형상의 인물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동일한 포즈를 드러낸 인물의 지속적 출현은 적어도 시초구성과정에서부
터 이행구성 2과정에 이르는 동안 문화예술 또는 공동체사회의 전통이 나름 이어지고 있음을 읽게
하고 있다. 그런데 거듭 등장한 긴 물체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가 의문이다.
긴 길이로 표현 물체의 무게는 결코 무거울 수 없다는 상식에 도달한다. 따라서 해당 인물이 지닌
긴 물체는 가운데가 뻥 뚫린 대롱의 형태여야만 합리적인 풀이가 된다. 그러므로 해당인물은 가운
데가 빈 모습으로 중량이 매우 가볍게 만들어진 긴 대롱같은 물체를 입에 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이 물체는 아주 가볍게 만들어진 피리 29) 와 같은 악기일 개연성이 짙다.
확언하긴 어렵지만 극히 가볍고 가운데가 빈 대롱처럼 생긴 물체가 사실상 피리였다면 이 울주대
곡리 암각화의 주암면에는 피리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이 시초구성과정에서 이행구성2과정에
이르도록 지속적으로 암각미술행위의 과정에서 표현되어 전해지고 있음을 알게 하고 있다. 적극적
으로 추정하자면 향(向)우측방으로 멀리 바다로 어로조업을 떠나는 사람들이 어로의 성공과 무사귀
환이 있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피리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 표현된 것일 수도 있을 터이다.
어떻든 선사 당시 한반도 동남연해지역을 점유한 일부 공동체사회 속에서 지속적인 음악문화활
동이 소박하게 펼쳐졌다는 견해가 가능해지게 되는 근거가 된다.
29) 『漢書』, ‘律歷志’를 보면, ‘黃帝가 伶倫이란 자로 하여금 昆溪에서 대나무를 베어 12구멍의 피리를 만들게 하였다.’
는 내용을 보게 된다. 황제는 전설적 인물로 치부되지만 실제인물로 가정한다면 재략 서기전 2700년경의 인물로 추정
될 수 있다. 곧 신석기시대 후기 무렵에 해당하는 인물로 추론될 여지가 있다. 그런데 울주대곡리에 암각미술작업에
의해 새겨진 긴 대롱을 취급하는 인물이 피리를 부는 인물일 경우, 시기적으로 전설적 인물인 황제의 피리 만든 전승담
과 비교가 되고 있어 흥미롭다.
박선식, 「탁록 戰鬪說話에 반영된 동북아 상고읍락사회 내 집단적 갈등과 상고시기 旗幟鼓角의 군사적 운용」, 『학예지』
21집, (서울: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 2014), P.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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