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6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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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낭신의 실체는 사실상 입향시조인 할매와 할배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34) 그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본다면, 울주 대곡리 암각화의 하부에서 살펴본 수척한 남성인면도상은 일종의 골매기 서낭의 한
상징인물로 상정해볼 여지를 느끼기 때문이다. 좀 더 신중할 문제이긴 하지만, 대곡리 암각화의
하부에서 확인한 수척한 남성 원로의 모습은 골매기서낭의 한 축인 할배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울주
대곡리암각화의 인물도상은 한국 동해안지역의 풍어제가 지닌 속성의 원형을 담고 있다고 추론해
여지를 강렬하게 느끼게 된다.
6) 소결
필자는 대곡리 암각화의 암각된 도상들을 통해 전체적으로 생동감이 있고, 역동적인 동물군상
의 분포와 집단 또는 개별적으로 생업이나 일상생활을 즐기는 인물상의 분포를 확인하였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수렵기술이나 어로기술이 아직 미성숙의 단계에서 매우 수척한 남성상으로
상징화된 원로가 존숭되던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던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한 선사사회의 원로
가 구체적으로 담당한 역할이 무엇인지 확언할 수는 없다. 다만 대곡리암각화에서 보게 되는 관련
단계의 인물군상들이 갈등이나 불협화음을 겪는 것이 보이지 않고 저마다 편안해 보이는 분위기
를 통해 존경받는 원로가 존재하던 당시가 일정한 공동체의식으로 작동되고 있었음을 미루어 짐
작해볼 여지는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공동체의식의 존재는 대곡리암각화의 중부 위치에서 보게 되는 궁수소집단의 경우에서
도 읽혀지는데, 언뜻 『서경』에서 보게 되는 무늬 있는 가죽의 포획으로 국제적 교역에 나섰던 島夷
계열 수렵세력의 일부일 수도 있겠다는 소견을 느꼈다. 그것은 『고촌선생문집』에서 확인되는 것
처럼 단군이 남해의 바닷가로 순행했고, 지금의 함경남북도 일원에 단군제 풍속이 적지 않았던 民
族誌的 자료의 내용을 통해서도 넉넉히 헤아려볼 수 있는 추론이다. 35) 더욱이 강원도 고성지역에
서 발견된 타원형 홈이 파인 돌칼이 울산의 황성동 유적에서도 더욱 큰 규모로 만들어진 양상으로
확인된 점은 강원도 고성에서 울산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물질문화의 교섭이 이루어졌을 개연성을
느끼게 하고 있다. 따라서 함경북도 연안으로부터 이어진 해상 어로물질문화가 강원도 고성지역
을 중간지역으로 하여 울산지역까지 이어졌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되다.
한편 대곡리암각화의 하부에서 느낀 원로 존숭의 사회적 분위기와 상호융합적 공동체의식은 중
부 위치의 궁수 소집단을 이어 최상부에서 다시 向동측방의 어로선을 향해 시선이 일치된 공동체
적 기원의 분위기로 재연됨은 매우 주목할 점이다. 그러한 시선일치의 인물군집도상은 『삼국유
사』에 기록된 한국 선대조상들의 세계관인 홍익인간의 관념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같은 소망을 공유하고 그 소망을 함께 취득하고자 공동체의식으로 단결된 정황은 읽어낼 수 있다
34) 심상교, 「동해안풍어제의 원형미학적 연구」『공연문화연구』41권0호, (서울;한국공연문화학회, 2020), p. 333.
35) 文化公報部 文化財管理局,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第十二冊, (서울; 서울신문사 출판국, 1981), pp. 7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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