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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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로 여겨지는 『管子』의 기록을 보면 이전인 하우씨 시기에 도이세력이 활동하던 지역에 똑같이 거
주하던 세력들이 역시 같은 무늬가 있는 가죽을 중원지역에 판매하고 있었다는 기록은 상당한 의
미를 전하고 있다. 적어도 도이세력이 하우씨의 시기를 지나 서기전 7세기경에 이르도록 무늬가
있는 가죽 곧 아롱범의 가죽을 수출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管子』의 기록에서 무늬 있는 가죽을
팔던 세력을 ‘발조선’이었다고 적시하고 있다. 따라서 같은 지역에서 이미 상고시기인 하우씨의
시기에 같은 무늬 있는 가죽을 팔던 도이는 사실상 발조선보다 앞서 ‘先발조선 사회’의 사람들이었
다고 추정함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울주 대곡리 암각화에 보이는 아롱범과 도이 그리고 발조선인들이 포획했던
수렵동물인 아롱범과는 무슨 연관이 있을까가 의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그 어떤 연관된 자료는 보
이지 않는다. 다만 울주 대곡리암각화유적과 비교적 가까운 울산의 황성동유적에서 확인된 거대
한 돌칼이 하나의 실마리를 느끼게 할 뿐이다. 거론된 이 돌칼은 손잡이의 기능을 하는 손잡이 용도
의 타워형 홈이 크게 파져 그 돌칼을 쓰던 사람이 편리하게 쥘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 돌칼
과 거의 비슷한 돌칼이 강원도의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따라서 적어도 크게 타원형홈
이 파진 돌칼이 고성에서 울산까지 이어짐은 두 지역간의 문화적 교섭이 존재했음을 엿보게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타원형 돌칼은 어떤 용도로 쓰고자 만들어진 것인지가 관건이 될 수 있다. 현재
학계에서는 확정된 의견을 제시하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필자는 타원형 홈이 패인 돌칼은 동물의
해체용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해당 돌칼의 타원형 홈은 사람의 손이 잘 빠지
지 않게 하고자 하던 손잡이 용도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손이 잘 빠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는 숱한
포획동물의 해체 목적과 가장 적절하게 연관된다. 필자는 해당 돌칼이 거대한 고래로부터 들소와
산양 또는 아롱범이나 여느 범 따위의 해체에 유용했다고 판단한다.
그림 11 강원도 고성(문암리)과 경남 울산(황성동)에서 출토된 타원형의 홈이 파인 돌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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