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3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P. 163

한국 선사암각화에 반영된 공동체 의식  박선식



                 관한 교육적 실용성의 관점          19)  제기, 또는 ❸ 제작시기에 관한 편년           20) 의 추론, ❹다른 암각화와의

                 문양적 유사성이나 차별성의 검토, 그리고 ❺ 적용된 암각기법의 선후관계                           21) 나 중첩성  22) 의 분석,
                 나아가 ❻ 민속학적 관점         23) 에서의 비교 등으로 일치되지 않은 연구의 다양성을 표출하고 상당히

                 긍정적이고도 구체적인 논의를 진전시켜왔다.
                   필자는 울주 대곡리 암각화에서 그 主岩面의 바닥이 약 13도 기울어진 현지 여건을 고려하여 선

                 사당시의 암각미술행위는 가장 안전한 부위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선사당시의 암각미술행위는 ① 하부 중앙부위에서 向우측방으로 암각미술 실행 ②하부 중앙부위

                 의 向좌측방에서 암각 ③중부 중앙부에서 向우측방으로 암각미술실행 ④중부 중앙부의 向좌측방
                 암각 ⑤상부 중앙부 또는 좌우측 어느 부위에서 無順으로 암각 ⑥중부 중앙부 또는 하부 중앙부에

                 서 하부 向우측방에 海獸(곧 고래 떼 등)의 일부 모두 쪼기 ⑦상부 向좌측방에 海獸群을 모두 쪼기로


                 한편 김현권의 경우, 대곡리암각화에서 확인되는 활쏘는 인물상의 모습을 통해, 칼박타쉬의 암각화를 연상하면서 사냥
                 모습을 ‘일종의 제의 장면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김현권, 「대곡리암각화 인물상의 의미와 도상 양식」, 『울산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 (서울:한국미술사연구소, 2014), P. 39.)을 거론하기도 하여 주목된다. 활쏘기의 모습이 단순한 수렵
                 에 그치질 않는 제의의 한 장면일 수 있다고 보는 견해는 마치 한국의 전통 굿마당에서 간헐적으로 시연되는 무당의
                 활쏘기 모습을 연상시키는 데, 그 때에 무당이 쏘는 화살은 당연히 액막이 또는 악귀의 퇴치와 연결되는 메시지를 반영
                 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또한 호세 베렝구어&마티아즈 스트레커는 고래 수렵에 관한 암각미술의 유산이 새겨진 안데스 산맥의 엘 메다노 계곡
                 암벽이 지닌 의미에 대해, ‘풍성한 어획과 성공적인 대양 해양동물 및 과나코 수렵을 기원하는 위대한 봉헌미술의 성지’
                 라고 표현한 점이 주목된다.(호세 베렝구어&마티아즈 스트레커, 「칠레와 페루의 선(先)스페인시대 바위그림에 표현된
                 고래 및 고래목(目) 동물의 도상」, 『고래와 암각화』(2017년 반구대암각화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료집), (울산:울산암각
                 화박물관, 2017), P. 48.
                 19) 정동찬은 대곡리암각화를 두고서, 암각화의 그림들이 짐승들에 관한 지식과 사냥방법, 분배법칙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정동찬, 「우리나라 선사바위 그림의 연구-대곡리 선사바위그림을 중심으로」, 연세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6.)
                 20) 문명대는 모두쪼기와 선쪼기의 선후관계에 주목하여, 모두쪼기에 의한 암각이 선쪼기한 암각보다 앞섬을 주목했
                 다. 또한 표현주의에 가까운 자연주의적인 양식, 동적인 표현주의적 양식, 추상주의적 양식 등 세 가지의 양식에 따른
                 편년 등을 제시했다.(문명대, 「대곡리 암각화의 의미와 기법과 양식을 통한 미술사적 편년 연구」, 『울산반구대암각화』,
                 (서울:한국미술사연구소, 2014.)
                 이하우는 근래 울주대곡리 암각화의 주암면의 암각내용을 총 5개의 제작층으로 구분하여 표현내용의 특징을 설명하고
                 자 하여주목된다.(이하우, 「반구대 암각화의 내용과 제작층별 의미」『대곡천 암각화군 上』종합조사연구보고서,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9)
                 21) 임세권, 「한국선사바위그림의 연대에 대하여」, 『남사 정제각 박사 고희기념 사학논총』1984.
                 22) 임두빈은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들이 ‘수렵주술을 위한 것이든, 토테미즘적 사고에 의한 것이든, 샤머니즘적 목적
                 하에 그려진 것이든 간에, 먼저 그린 그림의 목적이 달성되고 나면 그것은 이미 효력을 상실한 그림이기 때문에 얼마든
                 지 새로운 그림을 겹쳐지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이다.’고 하여 울주대곡리 암각화에서 적지 않게 발견하게 되는 도상간의
                 중첩이 효력을 잃은 그림이기 때문이라는 나름 주목할 의견을 제시하였다.
                 임두빈 지음, 『원시미술의 세계』, (서울:가람기획, 2001), P. 149.
                 23) 송화섭은 반구대대곡리 암각화 도상에 반영된 민속학적 의미에 주목하여, ‘반구대암각화는 대형 고래가 환태평양
                 서쪽 연안을 오가는 고래 회유의 남한계선에 위치한다.’고 적시하였다. 그리하여 베링해와 오호츠크 해역에서 서식하
                 는 대형 고래들이 북태평양의 동쪽과 서쪽으로 이주하는 관행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해양수렵민들이 고래를 따라
                 한류에 편승하여 울산만까지 이동해 왔고, 그들은 한시적으로 이주하면서 반구대 암각화를 새긴 것으로 이해한 점이
                 주목된다.(송화섭, 「반구대 암각화 도상의 민속학적 의미」, 『대곡천 암각화군』上, 종합조사연구보고서, (대전:국립문
                 화재연구소, 2019)



                                                                                                    163
   158   159   160   161   162   163   164   165   166   167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