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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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과 유사한 상징부호는 다른 나라의 선사암각화에서도 아주 보편적인 상징부호임을 자연스럽게 수
용한다면 우리 선조만이 독특하게 특화한 문화인 것만으로 고집할 까닭은 없다. 다만 얼마나 한반
도 또는 북방의 滿·蒙지방에 이루어진 선사문화가 다른 지역과 국가의 선사문화와 차이점을 지닌
것인지를 살피면 될 일이라고 여겨진다.
2) 전승 설화기록들을 통해 엿보는 상고시기 지도자의 공동체 우선의 관념
필자는 한국인의 선사시기 선조들이 지녔을 세계관의 내용에 관심을 지속시켜온 입장이다. 따
라서 언제나 근본적인 정체성의 원형에 관한 탐구를 이어오고자 고민했다. 그리하여 문헌기록으
로 알게 되는 한국 상고시기의 ‘홍익인간’ 관념과 연관되는 弘益指向性의 공동체의식을 읽을 수 있
는 단서는 또 없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런 가운데 『청학집』과 『고촌선생문집』 그리고 『서경』 등의
자료에서 보게 되는 해양관련 거론내용은 필자의 상고시기 연구에 또 다른 고민의 계기가 되었음
을 밝힌다.
우선 『청학집』을 보면 ❶단군시절에 엄청난 水災를 맞아 도읍지가 침수되어 단군께서 네 아들과
함께 적절한 피난지를 모색하였음이 거론되고 있다. 15) 이 기록을 통해 알게 되는 수재에 따른 도읍
지의 변동에 관한 故事는 상고시기 한국 선조들이 물에 관해 예민할 정도로 관련 정보와 지식의
습득에 적극적이었을 개연성을 느끼게 하고 있다. 또한 『청학집』의 다른 부분에서 ❷ 檀氏(단군 왕
조-필자 주)의 시절에 南夷의 근심이 있었다고 한 내용을 보게 된다. 16) 하지만 그 기록의 뒤로 관련
된 내용이 전무하여 관련한 인과관계가 너무 궁금하다. 그런데 『고촌선생문집』에서 ❸단군이 남
쪽 방향으로 벌인 남행기사가 보이고, 그 가운데 비천생에게 南海長의 직임을 맡겼다는 점은 읽을
수록 흥미를 자극받는다. 17) 이 기록에서 거론한 단군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의 단군인지는 분명
치 못하더라도 비천생이 단군왕검의 시절 인물임이 『대동사강』이라는 역사기록물에 적시된 점이
참고가 된다. 따라서 단군왕검께서 남행하시어 해상업무를 담당할 직임자를 선임했음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남해장이라는 해양관련 직임자를 선임했는지는 앞서의 『청학집』
에 보이는 ‘남이’세력의 준동과 견주어 고민해 볼 여지를 느낀다. ‘남이’라 지칭되는 해양관련세력
을 억제하기 위해 또 다른 남해안의 해양세력과 제휴 또는 연계가 절실했던 단군께서 직접 남해연
15) 洪水滔天 泛濫登萊之海 浿水漲溢 平壤沈潛 四王子來登是山 相土地之宜 都于唐莊里.
『靑鶴集』
16) 檀氏之世 有南夷之患.
『靑鶴集』
17) 東方初無君神人降于太白山檀木下國人立爲君乃檀君也 君巡于海上祀后土有二赤龍見於海中又有兩神女降自靑空捧
紫金榼遺之 海岸君驚異就而開視中有緋衣男子君顧謂臣民曰此必皇天后土感於誠敬降此神兒以示靈異之跡 使謹厚女養之
年及十五體貌壯大志氣雄健 君乃以所着緋衣命緋字去絲從衣以裵爲姓名曰天生乃拜相國封南海長
『孤村先生文集』(乾) ‘檀君朝裵氏得姓上系’
박선식의 저작(「동북아 상고읍락사회 내 政敎建築物의 조영양상과 ‘九黎’사회의 변동에 따른 ‘朝鮮’大邑落연합체제 내
政敎文化의 변화」『태백진훈과 동북아상고문화』, (서울: 도서출판 동강, 2019), p. 293.)에서 재인용했음을 밝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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