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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사암각화에 반영된 공동체 의식 박선식
한편 한국의 상고사를 단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문헌 기록으로 『삼국유사』「기이」편은 너무 유명
하다. 편목명이‘왕검조선’이라 하여 소개되고 있는 이른바 고조선의 시원 내용은 아무리 중요성을
강조해도 부족하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상고사를 고찰하는 한국 내 연구자들은 제각기 관점이 달
라 중요하게 느끼는 부분과 그 방점은 달리 찍힌다. 한 예로 일각의 연구자는 상고시기 한국의 상고
사 전개과정에 대해, 『삼국유사』가 아닌, 서거정·최부 등이 공찬한 『동국통감』「외기」에 의한 기원
전 2333년을 인정하기도 한다. 더불어 물질문화적으로는 미송리식 단지(토기), 거친무늬거울, 비
파형동검과 지석묘 등을 표식적인 유적과 유물로 인지한 경우에는 기원전 17세기에서 기원전 12
세기로 소급된다고 거론한 바 있다. 13) 이어 “지석묘와 비슷한 배경을 갖고 나타나는 석관묘(돌널
무덤)는 청동기시대에 시베리아로부터 滿·蒙지방을 거쳐 한반도 전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이는
평안북도 용천 신암리와 개천 용흥리 출토의 靑銅刀子로 보아 시베리아의 안드로노보의 카라수크
의 청동기문화(기원전 1300년~기원전 1000년)와 관련을 말해준다.” 14) 는 설명도 참고가 된다.
뿐더러 일각의 연구자들에 의해 지금의 한반도는 물론, 북방의 滿·蒙지방을 포괄하는 문화의 담
당 주체가 도리어 남아시아 지역 연안해 지역민의 순다랜드를 통한 북방이동의 결과일 수도 있다
는 견해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그러한 견해는 극동의 ‘악마의 문’ 동굴의 발굴조사의 결과와도
연관되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학술적 견해이다. 더불어 부산 가덕도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조사된
40여구의 대량의 인골에 관한 유전자적 분석의 결과 유럽 북독일계 줄무늬토기계(LBK)문화인임
이 밝혀져 한국 상고사의 연구는 그야말로 대혼란의 상황을 맞이한 셈이기도 하다.
그러나 차분하게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그동안 한국상고사를 이해하는 관점이 지나치게 단일한
기준과 자료에 매어 있었기 때문에 선사시기에 현대 한국인의 선조들이 여러 곳으로부터 다양하
게 이르렀을 융통성을 처음부터 연구자들 각자 스스로 막았던 점은 없는지 성찰케 하고 있다. 이를
테면 울주의 대곡리 암각화에서 보게 되는 해양어로작업선이 러시아의 암각화에서 보게 되는 어
로작업선과 유사하게 이해될 수 있고, 천전리 암각화(각석)에서 보게 되는 여성의 중요부분(女根)
를 기대한다.
복기대, 『홍산문화의 이해』, (서울:우리역사재단, 2019)
우실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서울:지식산업사, 2018)
박선식, 「서북한지역 출토 ‘구련문시문토기’에 반영된 문화상」『서울文化』20집, (서울: 서울문화사학회, 2020), pp.
100~143.
박선식, 「서북한지역 출토 구련문시문토기의 문화적 의미」『단군학회 2019년 가을세미나 발표논문집』, (2019), pp.
1~26.
13) 최몽룡, 「中國 陝西省 神木縣 石峁村의 石峁와 皇城臺 유적」 『동북아고대역사』제3권, (2020), p. 41.
14) 최몽룡은 같은 글에서 이어 울주의 대곡리 암각화는 물론 “고령의 양전동 등지의 암각화와 이의 계통으로 여겨지는
암각화들이 멀리 남원 대곡리의 내륙에까지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의 기원지로는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의 사카치
알리안 유적이 거론될 수 있겠다. 양쪽의 연대가 정확히 맞지 않는 것이 현재 문제점으로 남아 있지만 한국문화의 원류
중의 하나인 암각화의 기원이 10,000년~1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무르 강 유역의 가샤 유적(오시포프카
문화) 신석기 Ⅰ기 원시무문토기단계에서처럼 아무르 지역에서 해로로 울산(太和江)-포항(兄山江口) 지역으로 직접
들어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환태평양지구의 문화권도 암시한다.”고 거론하여 주목하게 된다.
최몽룡, 앞의 글, 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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