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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최영성
(名號)를 세우되 정역(淨域)을 나타낸 것을 ‘불(佛)’이라고 한다. ‘인심’이 곧 부처이니 부처를 능
인(能仁)이라 일컬음은 이를 본받은 것이다. 욱이(郁夷: 해뜨는 곳)의 유순한 성원(性源)을 인도
하여 가비라위(迦毘羅衛: 釋迦)의 자비(慈悲)의 교해(敎海)에 닿도록 하니, 이는 돌을 물에 던져
물결이 퍼져 나가는〔石投水〕 듯하고, 빗물이 모래를 모우는〔雨聚沙〕 것 같이 쉬웠다. 14)
우리 민족의 어진 성품과 불교의 자비를 동일시하여 ‘인심즉불(仁心卽佛)’이라 하였다. ‘만물이
처음으로 생겨나는 방위〔萬物始生之方〕’라는 뜻에서 동방을 ‘동방(動方)’이라 한 것이 이채롭다.
우리 민족에게는 어진 마음과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애초부터 갖추어져 있으니, 물이 반드시 바다
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순한 동방 사람들은 애써 이끌지 않아도 불교의 자비의 교해(敎海)
에 귀의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대숭복사비명」에서는, 동방은 ‘인’에 배합되므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품은 어질고 유순할 수밖에 없으며, 또 거푸집〔鑄型〕대로 주물이 만들어지듯, 우리나라에서 불
도가 성행하는 것은 그 틀이 본래부터 그러하다고 하였다. 15) 위의 글에서는 글의 목적상 동인(東
人)의 성품을 불교의 관점에서 설명하였지만, 경우가 다르면 얼마든지 다른 종교나 사상과 관련시
켜 해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에 소개한 글 내용은 대부분 중국 고대의 역사서 및 경서(經書)에 근거한다. ‘인이호생(仁而好
生)’은 『풍속통(風俗通)』에, ‘천성유순(天性柔順)’, ‘호양부쟁(好讓不爭)’은 『산해경(山海經)』에 나
오는 말로 우리 민족의 특성을 뚜렷이 알려주는 것들이다. 『산해경』은 그 내용을 전적으로 신빙하
기는 어렵지만, 군자국과 청구국이 나오는 「해외동경(海外東經)」 조와 「대황동경(大荒東經)」 조는
갑골문의 내용과 합치한다. 대체로 신빙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갑골복사(甲骨卜辭)는 은(殷)
나라 무정(武丁) 때의 것이다. 이를 미루어 청구국은 최소한 B.C 1400년 이전에 존재하였다고 할
수 있다. 16) 여기서 군자국에 대한 기록을 보기로 한다.
(A) 군자국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찼다. 짐승을 사육하며 두 마리의 큰 호랑이를 곁에 있
도록 하였다. 그 나라 사람들은 사양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를 않는다. 17)
(B) 동구(東口)의 산에 군자의 나라가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찼다. 18)
14) 『역주 최치원전집』 1, 257-258쪽, 「智證大師碑銘」 “五常分位, 配動方者曰仁〔心〕, 三敎立名, 顯淨域者曰佛. 仁心卽
佛, 佛目能仁則也. 道郁夷柔順性源, 達迦衛慈悲敎海. 寔猶石投水, 雨聚沙然. ⋯⋯ 姓參釋種, 遍頭居寐錦之尊, 語襲梵音,
彈舌足多羅之字. ⋯⋯ 宜君子之鄕也, 法王之道, 日日深又日深矣.”
15) 『역주 최치원전집』 1, 142-143쪽, 「대숭복사비명」 “我太平勝地也, 性滋柔順, 氣合發生. ⋯⋯ 從善如流. 是故, 激揚
君子之風, 薰漬梵王之道, 猶若泥從璽, 金在鎔. ⋯⋯”
16) 류승국, 『한국사상의 연원과 역사적 전망』, 71-72쪽.
17) 『산해경』, 「해외동경(海外東經)」 “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在旁, 其人好讓不爭.”
18) 『산해경』, 「대황동경(大荒東經)」 “有東口之山, 有君子之國, 其人衣冠帶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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