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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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鷄林地在鰲山側 仙儒自古多奇特
可憐羲仲不曠職 更迎佛日辨空色
위에서 말한 ‘선’과 ‘유’는 중국에서 전래한 도선사상과 유교사상이 아닌, 신라 고유의 사상적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뭐라 이름할 수 없어 ‘선’이라 하고 ‘유’라 하여 갈래를 지은 것일 뿐이다.
여기서 기이하고 특별하다는 의미의 ‘기특(奇特)’은 ‘현묘’에 비해 강도는 떨어지지만 역시 한국
고유사상의 특이성을 말한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성 싶다.
한편, 「대숭복사비명」 첫머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태평국(太平國)의 승지(勝地)는 사람의 성질이 매우 유순하고 지기(地氣)는 만물을 생기
게 하는 데 모아졌다. …… 이런 까닭에, 군자(君子)의 풍도(風度)를 드날리고 부처(梵王)의 도에
감화되어 젖는 것이, 마치 붉은 인주〔紫泥〕가 옥새를 따르고, 쇳물이 거푸집〔鑄型〕 안에 들어
있는 것과 같아서, ……
우리의 고대 국가인 태평국·군자국·청구국 사람들은 성품이 유순하고 어질며 군자의 기풍이 있
어, ‘선’과 ‘유’의 사상적 원천이 되어 왔으며, 또 불교가 전해왔는데도 전혀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
지 않고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는 점을 말하면서, 그 사상적 토양이 특이함을 찬양한 것이다. 이는
최치원이 「난랑비서」에서 고유사상인 풍류를 말하고, 풍류가 삼교의 핵심 요소를 본래부터 포함
하고 있음을 말한 것과 부합한다.
최치원은 유가와 선가의 원류가 동방이라는 점을 밝혔다. 불교 역시 마찬가지다. 최치원은 ‘인
(仁)’ 사상과 ‘박(樸)’ 사상을 유가와 선가의 핵심으로 보았다. 유교의 중심사상인 ‘인(仁)’은 바로
‘인(人)’을 뜻한다. 『논어』·『중용』·『맹자』 등 유교의 경전을 보면 ‘인(仁)’은 곧 ‘사람’이라고 하였
다. 13) 이는 ‘인’사상이 인간주체로부터 열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도가에서 핵심 개념인
‘박(樸)’ 역시 박실자연(樸實自然)한 인간주체를 의미한다. 이 ‘인’사상과 ‘박’사상은 유교나 도가의
핵심사상이기에 앞서 한국사상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즉, 인간주체를 중시하는 한국사상의 원
형으로서, 상고대의 군자국과 청구국으로부터 오랜 사상적 전통을 이루어 왔다는 점이다.
1. 군자국의 전통과 유교사상의 연원
최치원은 불교와 관련된 많은 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품을 주로 불교와 관련시켜 서술하
고, 불교가 이 땅에서 성행하는 것이 필연의 형세라고 하였다.
오상(五常)을 다섯 방위로 나누어 동방(動方)에 짝지어진 것을 ‘인(仁)’이라 하고, 삼교에 명호
13) 『논어』, 「미자(微子)」 “殷有三仁焉.” ; 『중용』 제20장 “仁者人也.” ; 『맹자』, 「진심(盡心) 下」 “仁也者人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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