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0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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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그 후 실학(実学)이나 행동으로 나라를 구한 의병처럼 실천을 중시한 겨레 정서와도 어우러지는

                 해석이다.



                   (6) 소결론
                   이상 살펴보았듯이 단군사화의 기록을 식량 부족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환웅은 새로운 땅을 개척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환인이 이를 알고 만주지역(三危太伯)을 내려다 보니 ‘식량 다
                 툼으로 멀어진 사람들 사이(人間)를 가깝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식량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지역(可

                 以弘益人間)’이라고 판단하여, 그곳으로 환웅 무리를 떠나보냈으며, 환웅이 새 땅인 만주 지역에서
                 식량을 많이 생산하여 식량 다툼을 없애고 함께 어우러져 잘 사는 사회 만들기를 실천한(在世理化)

                 과정을 기술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환인 당시에는 없었던 ‘弘益人間’이라는 한자에 매달리지 말고, 당시의 상황과 단군사화

                 의 기록을 면밀히 비교 분석하여 그런 상황 및 우리 겨레의 역사·문화 등 민족정서와 어우러지는
                 홍익인간의 바른 의미를 하루빨리 찾아내어야 한다.


                   3) 당시 상황에서 도출되는 홍익인간의 대의(大義)

                   이처럼 당시 인류사회의 상황과 단군사화의 기록으로 비추어 볼 때, 홍익인간(弘益人間)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해석은 나올 수가 없다. 한자 자의(字義)에만 매달린 잘못 해석이다. 따라서

                 아래와 같이 몇 가지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바른 해석을 시도해본다.


                   (1) 식량 갈등이라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홍익인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환인이 ‘가이홍익인간(可以弘益人間)’이라는 생각을 한 당시의 상황은 환

                 국의 인구가 너무 많아 현재 거주 지역에서의 식량 생산 만으로써는 전체 요원들의 식량을 충분히
                 조달할 수 없어 식량 다툼이 늘어나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환웅은 추가적인 식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땅을 개척하려는 의지
                 를 가지고 있었고, 환인은 삼위태백이 ‘사람 사이의 식량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 만큼 식량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이라고 판단하여 그곳으로 환웅을 내려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2) 식량 생산과 직결되는 삼위태백(三危太伯)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삼위태백(三危太伯)은 식량 생산과 직결되어야 하므로 삼위산과 태백산

                 (太白山)을 의미한다는 일반적 해석은 설득력이 약하다. 그리고 환웅이 백두산 정상에 내려와서 신
                 시를 건국했다는 기록도 식량 생산과는 썩 잘 어울리지 않는다. 산꼭대기에 무리 3,000이 내려왔

                 다는 것도 의문이지만, 그곳에 자리 잡고 식량 생산을 많이 하기에는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물의
                 량이나 땅의 넓이로 보아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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