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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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위의 단군사화에 나오는 홍익인간과 관련되는 상황을 몇 가지로 요약해본다.
(1) 환웅(桓雄)이 천하(天下)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 당시는 식량부족으로 인한 다툼이 심화된 시대로서 식량 생산을 위해
새로운 땅을 개척해야 할 필요가 있는 시기였다. 따라서 환웅이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구하
고자 하였다는 말은 ‘식량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땅을 개척하여 식량을 증산함으로써
인간 세상을 식량 갈등으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새 땅 개척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 있
다.
(2) 환인이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보니 ‘홍익인간 할 만했다’.
환인 당시에는 한자가 없었으니 환인도 일연이 기록한 ‘弘益人間’이라는 한자로 생각하지는 않았
을 것이다. 그러나 환인이 삼위태백(三危太伯)이라는 ‘지형’을 내려다보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
할 만하다’고 판단했으니,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지형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앞항 ‘식량 생산’의
필요성과 연결시키면 ‘식량을 많이 생산할 만한 지형이라 판단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단군사화를 보면, 삼위태백(三危太伯) 역시 현재의 대부분 학자들처럼 단순하게
삼위산(三危山)과 태백산(太白山)이라고 해석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삼위태백의 ‘伯’자와 태백산
의 ‘白’자가 서로 다르기도 하고, 환웅이 내려온 곳이 삼위산(三危山)이나 태백산(太白山)과는 전혀
다른 태백산정(太伯山頂)이며, 식량 생산을 위한 이동이라면 산꼭대기에 내려왔다는 기록도 좀 비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식량 생산과 관련되는 삼위태백(三危太伯)은 어떤 지형이며 어디일까? 김종서 박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삼위태백(三危太伯)은 삼위산과 태백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삼면이 험한 산으로 둘러싸인
(三危) 크게 드러난 넓은 평야 지대(太伯)’라고 해석해야 하며, 대흥안령산맥, 소흥안령산맥, 백
두산맥으로 둘러싸인 적봉시의 홍산이 이런 상황에 가장 가깝다. 환웅천왕은 이곳에 내려와 땅
에(下) 신단(神壇)을 세우고(樹) 그곳을 신시라 불렀던 것이다.” 32)
이처럼 삼위태백을 식량 생산을 많이 할 수 있는 평야 지대라고 보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면서
새로운 시각이라 볼 수 있다.
(3) 서자(庶子) 환웅에게 무리 3,000의 지휘권을 주어 떠나보냈다
‘무리 3,000’은 당시의 인구로 보아 매우 큰 집단이다. 당시는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라 연맹형
32) 김종서, 앞 책 『잃어버린 한국의 고유문화』, 100~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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