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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최영성
이명(同出而異名)’이란 말의 뜻에 꼭 들어맞는다. 이런 까닭에 풍류도의 성격은 노자가 말한 ‘동위지
현(同謂之玄)’이요, ‘중묘지문’인 것이다. 최치원이 『노자』와 왕필주를 이끌어 현묘지도라 명명한
것은 이처럼 내력이 있고 심오하다. 그는 「대숭복사비문」 서두에서도 동방과 동인의 성격을 논하면
서 “중묘지묘(衆妙之妙)를 무슨 말로써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10) 라고 탄성을 발한 바 있다.
도가철학 전공자 후쿠나가 미쓰지(福永光司: 1918~2001)에 의하면, 노자의 ‘현’은 많은 변화와
다양성을 내포한 근원적 하나〔一〕다. 그 하나에서 세계의 만물이 나타나고 현상화한다. 11) 이 ‘현’
을 현묘지도인 풍류도에 비할 수 있다. 즉, 현묘지도는 ‘포함삼교’로 구체화되는데, 여기서의 ‘포
함’은 삼교의 핵심적 내용이 근원적으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변화와 다양성’을 간
직한 풍류도에서 삼교사상과 부합되는 내용이 피어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포
함’이란 두 글자에는 ‘생’(새로운 탄생)의 의미가 내함(內含)되어 있는 것이다. 『노자』 제42장에서
는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이라 하여 우주 만물의 생성 과정을 밝힌 바 있다. 이 때의 ‘생’
을 ‘포함’이란 말과 연결시켜 볼 수 있을 듯하다.
Ⅲ. ‘포함삼교(包含三敎)’의 역사적 근거
최치원은 당시 국제적 가치기준이었던 유·불·도 삼교사상을 깊이 연구하여 그 핵심과 진수(眞
髓)를 파악하였다. 나아가 삼교가 종착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으며, 삼교사상에 대한
연구의 기반 위에서 풍류도를 해석하였다. 삼교사상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가 풍류사상을 해석하
는 데 토대가 된 것은 큰 특성임이 분명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한계일 수도 있다.
최치원은 우리 고유사상과 삼교사상 사이의 상통점을 찾아내는 데 적극 힘썼다. 이는 일차적으
로 삼교사상을 우리의 전통사상의 체계 속에서 재발견하려는 것이요, 궁극적으로는 ‘삼교의 토착
화’를 염두에 둔 의도적인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삼교는 한갓 외래사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
다. 삼교사상의 요소가 본래부터 풍류도에 함유(含有)되어 있기 때문에, 삼교사상이 우리나라에서
성행하리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최치원은 「지증대사비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계림의 땅은 오산 곁에 있는데
예부터 선(仙)과 유(儒)에 기특함이 많았네
어여쁠손, 희중(신라 임금)이여! 직무에 태만하지 않고
다시금 불일(佛日)을 맞아 공과 색을 분별하였네 12)
10) 『역주 최치원전집』 1, 195쪽, 「대숭복사비명」, “衆妙之妙, 何名可名.”
11) 福永光司, 『노자(老子)』, 東京: 朝日新聞社, 1968, 13쪽 참조.
12) 『역주 최치원전집』 1, 286쪽, 「지증대사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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