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P. 8
정신문화 분과
러 풍류의 실체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최치원이 생각하는 민족 고유의 도는 선인들의 ‘유풍여류’ 그것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풍류’ 두
글자로 정착되었을 것이다. 전대부터 내려온 전통〔遺風〕과 그 흐름이라는 의미다. 최치원은 여기
에다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먼저 유가에서 중시하는 ‘풍(風)’과 ‘화(化)’의 개념으로 재해석하
였다. 그런 해석을 담은 글이 「난랑비서」다. 풍류는 ‘풍화’의 의미로 풀어낼 수 있다. 둘다 ‘바람’과
‘변화’라는 개념적 사유의 틀로 되어 있다. ‘바람’이 체라면 ‘흐름’은 용이다.
최치원의 풍류 해석에는 ‘바람의 철학’, ‘변화의 원리’가 그 원천을 이룬다. 『주역』 관괘(觀卦) 및
손괘(巽卦)의 내용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최치원이 삼교를 회통한, 학문의 폭이 넓은 학자임에도
일차로 유가적 해석을 내리게 된 것은, 풍류가 화랑도의 지도이념으로서 치국(治國)의 대강(大綱)
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가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듯하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설교지원(設敎之源), 비상선사(備詳仙史)’라 하였다. ‘설교(設敎)’란
8)
말은 『주역』 관괘에서 “성인이 신도(神道)로써 교를 베풂에 천하가 열복(悅服: 感化)하였다” 고 한
데서 나왔다. ‘신도’는 ‘하늘의 신묘한 도’를 말한다. 그러나 풍류도는 ‘성인’이라는 특정 주체가
있어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자연발생적인 것이다. 최치원이 ‘성인신도설교(聖人神道設敎)’라고 하
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성인’보다도 ‘신인(神人)’을 더 친근하
게 여겼다.
최치원은 풍류도를 ‘신도’라고는 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신도’가 아닌 다른 어떤 말로도 적절
하게 설명할 수 없었으리라고 본다. 그가 말한 ‘현묘지도’가 바로 신도라 할 수 있다. 선학들 가운데
우리 고유의 사상과 종교를 범칭(汎稱)하여 ‘고신도(古神道)’로 일컫는 이들이 적지 않았던 것은 이
런 점을 의식한 결과라고 하겠다.
풍류사상의 본질은 최치원이 말한 ‘포함삼교 접화군생’ 여덟 글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포함
삼교 접화군생’은 최치원이 풍류도를 왜 ‘현묘한 도’라고 했는지 그 해답을 안에 담고 있다. 풍류도
가 유·불·도 삼교사상과 이질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자체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 또 풍류도가 군생
을 변화로 이끄는 것이 참으로 신묘하다는 점 때문에 ‘현묘한 도’라고 하였을 것이다.
‘현묘’란 말은 풍류의 원형질(原形質)을 암호화한 압출파일과도 같다. 이 말은 『노자』 제1장의 ‘현
지우현(玄之又玄), 중묘지문(衆妙之門)’이라 한 데서 인용하였다. 이 대목에 앞서 “無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此兩者同出而異名, 同謂之玄”이라는 말이 있다. 왕필(王弼)의 주(注)에 따르면 “유와 무
는 같은 곳〔同〕에서 나와 이름을 달리할 뿐이다. 그 ‘같은 곳’(복합체)을 일러 ‘현(玄)’이라 한다. 이
9)
신묘하고 신묘한 것은 온갖 미묘함이 나오는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풍류도를 ‘동(同)으로
서의 현(玄)’에 대치시키면, 풍류도야말로 중묘(衆妙)가 나오는 근본이다. 또 풍류도의 핵심 요소로
주어진 세 가지는 모두 풍류도에서 나왔으면서도 각기 그 성격을 달리하니, 위에서 이른바 ‘동출이
8) 『주역』, 「관괘(觀卦)」 “彖曰, 聖人以神道設敎, 而天下服矣.”
9) 왕필, 『노자익(老子翼)』, “同出者, 同出於玄也. 同名曰玄, ⋯⋯ 衆妙皆從同而出, 故曰衆妙之門也.”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