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국제학술문화제-정신문화 분과
P. 7

특강 |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최영성



                 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상의 언어’로서의 ‘풍류’란 명칭은 「난랑비서」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과연 그런
                 가. 최치원의 글은 전고(典故)의 인용이 넓고 적절한 것으로 정평이 있다. 한 문장도 내력 없는 것이

                 없다는 평이 있을 정도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동진(東晋) 때의 승려 도안(道安: 312~385)의 「이교
                 론(二敎論)」에 ‘풍류’의 개념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는 정보가 담겨 있어서 주목된다. 그 일부를

                 보자.



                    동도(東都)의 일준동자(逸俊童子)가 서경(西京)의 통방선생(通方先生)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
                    다. “제가 듣건대 풍류(風流)가 기울고 추락하여 육경(六經)이 이 때문에 편수(編修)되었으며,

                    뻐기고 자랑하는〔誇尙〕 기풍이 더욱 늘어남에 (『노자도덕경』) 이편(二篇)이 이 때문에 찬술되
                    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아주 유순(柔順)하게 하고 널리 윤택하게 하여 반드시 구제하

                    는 것을 유(儒)라 하고, 이를 씀에 만물에 결핍됨이 없도록 하여 반드시 소통시키는 것을 도(道)
                    라고 합니다. 이 모두가 공자와 노자의 신묘한 공덕이라, 자세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5)



                   일준동자와 통방선생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켜 유가와 도가의 성격에 대해 논한 것이다.

                 요·순·우·탕(堯舜禹湯)에서 문·무·주공(文武周公)으로 이어졌던 풍류가 날로 기울고 추락하자 공
                 자와 노자가 이에 발분하여 육경을 편수하고 도덕경을 찬술하여 풍류의 실마리가 끊어지지 않도

                 록 했다는 것이다. 사실상 풍류에서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이 분화하였다는 말이다. 이점은 최치원의
                 풍류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에 나오는 ‘풍류’는 ‘예부터 내려오는 기풍과 흐름’이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유풍여류(遺風
                 餘流)의 줄임말로 짐작된다. 최치원의 「지증대사비명」에서도 “석가〔金仙〕가 연꽃을 들어 보이며

                 후세에 전한 풍류〔所傳風流〕가 ……” 운운하여,  이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 바 있다. 여기서 ‘후세
                                                          6)
                 에 전한 풍류’란 ‘염화시중(拈華示衆)의 유풍여류’ 바로 그것이다. 최치원이 「난랑비서」에서 말한

                 풍류란 단어가 그의 다른 글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풍류는 화랑도의 지도이념이다. 화랑도가 체계와 조직을 갖춘 진흥왕 때 이미 화랑을 ‘풍류도(風

                 流徒)’ 또는 ‘풍류’라 하였다. 이것은 죽지랑(竹旨郞)의 낭도인 득오(得烏)가 풍류황권(風流黃卷)에
                 이름을 올렸다고 하는 『삼국유사』의 기록 이 뒷받침한다. ‘풍류황권’이란 화랑 집단의 명부(名簿)
                                                      7)
                 다. 이와 함께 ‘순수한 전통’이라는 의미로 ‘순풍’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최치원에 이르



                 5) 『광홍명집(廣弘明集)』 권8, 「이교론」, 〈歸宗顯本第一〉 “有東都逸俊童子, 問於西京通方先生, 曰: 「僕聞風流傾墜, 六經
                 所以緝修, 誇尙滋彰, 二篇所以述作. 故優柔弘潤於物, 必濟曰儒, 用之不匱於物, 必通曰道. 斯皆孔老之神功, 可得而詳矣.
                 ……」”
                 6) 『역주 최치원전집』 1, 282-283, 「지증대사비명」 “至憩足于禪院寺, 錫安信宿, 引問心于月池宮. …… 適覩金波之影,
                 端臨玉沼之心. 大師俯而覬, 仰而告曰, 「是卽是, 餘無言!」 上洗然忻契曰, 「金仙花目, 所傳風流, 固協於此」.”
                 7) 『삼국유사』 권2, 「孝昭王代竹旨郎」 참조.



                                                                                                       7
   2   3   4   5   6   7   8   9   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