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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문화 분과
은 주주사(周柱史: 老子)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
하는 것은 축건태자(竺乾太子: 釋迦)의 교화와 같다. 2)
짧은 인용문이지만, 최치원이 자기 나름의 사고의 틀, 해석학적 틀〔鑄型〕에 따라 고유사상을 이
해하고 정의를 내렸음을 알 수 있다. 풍류도에 대한 이해를 최치원의 철학사상에 연결짓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라 하겠다.
최치원이 삼교로써 풍류를 설명한 것은 다름 아니다. 당시 국제적으로 공인된 종교와 사상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기실 그 이면에는 상고대부터 내려오던 신교(神敎)의 삼원사상(三元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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想), 즉 삼위관(三位觀)이 깔려 있었다. ‘삼위’란 하나의 실체 안에 있는 세 위격(位格)이다. 우리나
라를 비롯하여 동북아문화권에는 상고대부터 천·지·인의 합일체(合一體)를 최상의 진리로 여기는
사유구조가 존재하였다. 이를 삼일지도(三一之道)라고 하는데, 경우에 따라 셋을 하나로, 하나를
셋으로 보는 것이다. 『천부경(天符經)』에서 ‘일석삼극(一析三極)’이라 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최치원이 풍류를 유·불·도 삼교와 대비하여 관계를 설정한 것은 한국사상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다.
Ⅱ. 신도(神道)의 전통과 풍류도
4)
필자는 2014년 「최치원의 풍류사상 이해와 그 기반」 이라는 논고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논고
를 통해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가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앞서 풍류도의 실재를 증언하는
최고(最古)의 자료라는 점을 밝혔다.
「순수비」 첫머리에서 “무릇 순박(純樸)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세상을 다스리는 도리〔世道〕가 참
〔眞〕에서 어그러지고, 오묘한 감화(교화, 변화)가 펴지지 않으면 사특함〔邪〕이 서로 다투게 된다”
(夫純風不扇, 則世道乖眞, 玄化不敷, 則耶爲交競)고 하였다. 여기 나오는 ‘순풍(純風)’이 곧 풍류도요,
‘현화(玄化)’는 ‘접화군생’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풍류의 역사적 실재를 밝히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다. 또 “하늘의 은혜를 입어 운명의 기록을 열어서 보임에, 그윽한 가운데 천신
(天神)·지기(地祇)와 통하였으며, 부록(符籙: 예언적 기록)에 응하고 ‘천산(天筭: 하늘이 점지한 운
명)’에 합치되었다”(又蒙天恩, 開示運記, 冥感神祇, 應符合笇)고 한 대목은 재래의 고신도(古神道)
사상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고유사상을 ‘순수함〔純〕’, ‘참됨〔眞〕’, ‘신비로움〔玄〕’으
로 요약한 점 등으로 미루어, 「난랑비」와 「순수비」는 사상적으로 상통하는 바가 많다. 자매편이라
2) 『삼국사기』 권4, 진흥왕 37년(576)조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
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3) 신교(神敎)에서의 삼위가 조화(造化)·교화(敎化)·치화(治化)라면 유교에서는 무극(無極)·태극(太極)·황극(皇極)이
요, 불교에서는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이요, 도교에서는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이라 할 수 있다.
4) 『한국철학논집』 40, 한국철학사연구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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