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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최영성
특강
최치원 「난랑비서(鸞郎碑序)」에 대한 검증
- 풍류(⾵流)의 역사성과 철학성을 중심으로-
1) 崔英成*
Ⅰ. 풍류도와 최치원
9세기 중엽, 경문왕으로부터 진성여왕 때에 이르는 시기에는 삼국통일 이후 이완되었던 사회 분
위기를 바로 세우려는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다. 화랑의 정신과 활동을 띄우는 것, 국가의식을 고양
하는 것, 우리 고유의 사상과 정신을 중시하는 것, 왕실의 혈통을 신성시하는 것, 여왕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종교적, 신비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것 등 정치적, 사상적 측면에서 중요한 흐름과 특징
적 현상들이 있었다. 최치원은 이런 흐름과 분위기 속에서 왕실에 협조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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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적 위상을 높여나갔다. 위와 같은 분위기는 『사산비명』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으니, 동인의식과
고유사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 그리고 왕가의 혈통을 신성시하는 성향이 드러나 있다. 「난랑비서」
에도 화랑 활동을 정치적으로 선전하고, 고유사상을 재인식하려는 일정한 의도가 깔렸다.
최치원은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을 ‘풍류’라 하고, 또 그 특질(特質)을 ‘포함삼교(包含三敎), 접화
군생(接化群生)’ 여덟 글자로 해석한 사람이다. 풍류는 역사적 실재이지만 그것의 해석과 정의에는
최치원의 주관과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최치원의 철학사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
야 풍류의 실체에 보다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최치원의 철학이 주체의식과 문명의식을 두 축으로 전개되었음은 앞서 말하였다. 동인의식으로
명명되는 주체의식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사상적 밑뿌리를 캐려는 데 집중되었다. 「난랑비서」 첫
머리에 나오는 내용은 고유사상의 원형(原型)에 대한 탐구의 결정(結晶)이다.
우리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다. 이를 ‘풍류’라고 한다. 교(敎)를 설(設)한 근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다. 내용은 곧 (A) 삼교를 포함(包含)하며 (B) 군생(群生)을 접(接)하여 변화로 이
끄는 것이다. 이를테면, 들어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魯司
寇: 孔子)의 주지(主旨)와 같고, 무위(無爲)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
*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무형유산학과 교수
1) 전기웅(全基雄), 「신라 하대말의 정치사회와 경문왕가(景文王家)」, 『부산사학』 16, 부산사학회, 1989,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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