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9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P. 259
『사기』 「조선열전」에 나타난 패수 위치 고찰 정규철
서쪽 방향에서 동쪽 방향으로 흐르는 강이었다. 그런데 고구려에 있는 패수는 반대로 동에서 서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역도원은 강 이름이 바뀌거나 이동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낙랑군 조선현
은 조선의 도읍이고 역도원 당시 고구려의 수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전한 시대의 패수를
고구려의 패수와 동일하게 보았던 것이다.
『수경주』의 주석이 『수경』 원문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한 무제 시기의 지명이 사라지고 후대에
영토 확장으로 행정구역이 이동하여 변화된 지명으로 고증하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산지가 많은
지역의 강물은 방향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역도원은 원래의 지명이 아닌 정치적 변화에
따라 바뀐 지명으로 한나라 시기 요수나 패수를 비정하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조선시대와 근현대에 주장된 패수의 위치설 중 한반도설과 요동설은 당대의
기록인 한서 와 수경 , 설문해자 등에서 말한 패수의 흐름과 일치 하지 않으므로 성립하기
힘들다. 더구나 당대의 문헌에서 패수와 함께 거론되는 요수도 현재의 요하로 확정할 수 있는 근거
는 찾기 힘들다. 따라서 당대 문헌이 제시한 동쪽이나 동남쪽으로 흐르는 강은 하북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패수는 요동 요새의 동쪽에 있으므로 당대 요동이 어디였는지를 확인하면 패수의 위
치는 대략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4. 진한秦漢시기 요동遼東
요동의 명칭은 전국시대 연燕이 요동군을 설치하기 이전부터 거론되었다. 허신은 『설문해자』에
서 요遼의 의미를 ‘멀 원遠’으로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요동’은 중원의 ‘머나먼 동쪽’ 또는 ‘머나먼
동쪽 끝’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원의 동쪽 끝 변방지역을 가리키는 요동이란 명칭이 연
나라에 의해 요동군이라는 행정지명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후 중원 동북방의 변경이라는 요동과
군현으로서의 행정지명인 요동군이 중국 역대 왕조의 공간 확장과 함께 동쪽으로 확장되었고 고
구려에 이르러서는 요동과 고구려는 같은 의미로도 쓰이게 되었다.
요동과 조선이 함께 나타나는 것은 한대 이후 문헌에서부터이다. 『사기』 「조선열전」에 요동과
조선이 구분되어 나타났다. 사기 에는 지리지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나 요동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을 세가와 열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기』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는
영토는 동으로 바다와 조선에 이르고, 서로는 임조臨洮·강중羌中에 이르렀으며, 남으로 북향호
北嚮戶에 이르고, 북으로 황하에 의지하여 요새로 삼고, 음산陰山을 따라 요동에 이르렀다. 36)
라고 하였다. 음산산맥은 동쪽 끝나는 곳에서 태항산맥과 연산산맥을 만나는데 이곳 장성 안쪽
36) 『史記』 「秦始皇本紀」. “地東至海曁朝鮮, 西至臨洮羌中, 南至北嚮戶, 北據河爲塞, 並陰山至遼東.”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