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6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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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명하여 무리 1천여 명을 모아 상투를 틀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여 동쪽으로 달아났는데, 요새
를 빠져나와 패수를 건너서 진나라의 옛 빈 땅인 상하장上下鄣에 자리 잡았다. 차츰 진번과 조
선, 만이 및 연과 제의 망명자들을 복종시키고 왕이 되어 왕험성에 도읍하였다. 25)
위만이 조선으로 들어 갈 때 경로는 요동 요새 ⇒ 패수 ⇒ 상하장이다. 위만이 동쪽으로 달아났다
고 하였으므로 패수는 대체로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서』 「지리지」에서는 요동군의 험독險瀆 주석에 패수는 낙랑군에 있다고 하였고, 낙랑군의 패
수현浿水縣 서쪽을 흘러 증지현増地縣에서 바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요동군 험독: 응소應劭가 말하길 조선왕 만滿의 도읍이다. 물이 험한 곳에 의지하여 있기 때문
에 험독이라 한다. 신찬臣瓉이 말하길 왕험성王險城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이곳이 바로
험독이다.
낙랑군 패수: 패수가 서쪽으로 증지増地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26)
역도원(469~527)은 수경주 에서 패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히고 있다,
허신이 말하기를 패수는 누방현鏤方縣에서 나와 동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어떤 이가 말하
기를 패수는 낙랑군 패수현浿水縣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십삼주지十三州志』에 말하기를 패
수현은 낙랑군 동북에 있고, 누방현은 군의 동쪽에 있는데 아마도 누방현은 그 현의 남쪽에 있는
듯하다. 옛날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 패수 서쪽으로부터 조선에 이르렀다.
조선은 옛 기자箕子의 나라이다. 기자가 이들에게 사람의 도리, 경작, 옷감짜기, 신의信義, 후생,
조약 등 8개의 법을 가르치니 삼감을 알고 예절의 풍속을 이루었다. 전국시대에 위만이 그곳의
왕이 되어 왕험성에 도읍하였는데 사방 수천 리였다. 그 자손 우거왕에 이르자 한 무제가 누선장
군樓船將軍 양복楊僕과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를 보내 우거를 쳤는데 우거를 패수에서 격파
하고 드디어 조선을 멸하였다고 하였다.
만약 패수가 동으로 흘렀다면 패수를 건너지 못했다. 그 땅은 지금 고구려의 도읍인데 내가 그
나라 사신을 만나 물어보니 성城이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그 물은 서쪽으로 흘러 옛 낙
랑군 조선현을 지난다. 조선현은 낙랑군 치소로 한 무제가 설치하였는데, 패수는 서북으로 흘러
간다.
25) 『史記』 「朝鮮列傳」. “朝鮮王 滿者, 故燕人也. 自始全燕時略屬眞番·朝鮮, 爲置吏, 築鄣塞. 秦滅燕, 屬遼東外徼, 漢興爲
其遠難守, 復修遼東故塞, 至浿水爲界, 屬燕. 燕王盧綰反, 入匈奴. 滿亡命, 聚黨千餘人, 鬼魋結蠻夷服而東走, 出塞渡浿水,
居秦故空地上下鄣, 稍役屬眞番·朝鮮蠻夷 及故燕·齊亡命者王之, 都王險.”
26) 『漢書』 「地理志」. “遼東郡 險瀆: 應劭曰: 朝鮮王滿都也. 依水險故曰險瀆. 臣瓉曰: 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 此自是險
瀆也.”, “樂浪郡: 浿水. 水西至増地入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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