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0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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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에 상곡上谷이 있다.
사기 「흉노열전」에
모든 左方의 왕과 장수들은 동쪽에 거주하고 상곡군上谷郡에서부터 동쪽으로 예맥 조선과 바
로 맞대고 있다. 37)
라고 하였다. 상곡은 산서성 동북과 하북성 서북 사이에 있던 것으로 비정하고 있다. 따라서 흉노
와 접해있던 예맥 조선이 상곡 동쪽에서 바로 붙어 있고 요동 또한 상곡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다.
상곡 동쪽은 북경 북부지역 연산산맥과 지금의 내몽골자치구 적봉시와 이어진다. 그렇다면 당시
의 요동은 연산산맥 안쪽에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현재의 하북성 내에 있었던 것이다.
진 멸망 이후 항우는 18명의 제후왕을 분봉하면서 한광韓廣을 요동왕으로 봉하였다. 한광은 서
기전 209년에 계薊에서 연왕으로 자립한 인물이다. 항우는 또 군공이 있던 연의 장수 출신 장도臧
荼를 연왕燕王으로 세우고 계에 도읍하게 하였다. 38) 한광이 이미 계를 중심으로 연왕으로 자립해
있었으므로 장도로 인해 요동으로 옮겨가게 된 한광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장도는 한광을
공격하여 요동국의 도읍인 무종無終에서 죽이고 요동국을 연국에 소속시켰다. 무종은 현재 옥전玉
田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다.
『사기』와 비슷한 시기에 쓰인 『염철론鹽鐵論』 벌공편伐功篇에
연나라가 동호를 습격하여 패주시키고 천리의 땅을 개척하고, 요동을 넘어 조선을 공격했다. 39)
는 기록이 있다. 연은 전성기인 소왕昭王 때 조선을 공격하여 서쪽 1000여 리를 점령하고, 상곡上
谷·어양漁陽·우북평右北平·요서遼西·요동遼東 5군郡을 설치하였다고 하였다. 이 때 연이 설치한
요서군과 요동군을 지금의 요녕성 전체로 보고 있다.
그러나 연이 현재의 요동까지 차지하였다고 보기는 힘들다.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대비시켜볼
때 연이 동호와 조선을 침공하여 들어온 범위는 현재 요서지역까지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대릉하
를 중심으로 하는 요서지역에 연계통의 문화가 확연히 나타나는데 비하여 요동지역은 계속하여
고조선계통의 문화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0) 따라서 고고학이나 문헌으로 살펴봐
도 현재의 요동과 고대의 요동은 다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기』 「몽염열전蒙恬列傳」에는
37) 史記 「匈奴列傳」. “諸左方王將居東方, 直上谷以往者, 東接穢貉朝鮮.”
38) 『史記』 「項羽本紀」, “徙燕王韓廣爲遼東王. 燕將臧荼從楚救趙, 因從入關, 故立荼爲燕王, 都薊.”
39) 『鹽鐵論』 「伐功篇」. “燕襲走東胡, 僻地千里. 度遼東而攻朝鮮.”
40) 복기대, 「기원전 7-4세기 遼西지역의 정치적 변화에 관하여」, 『文化史學』 No.21, (2004), 10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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