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2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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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지도 2 『中國歷史地圖集』 1권 (北京: 中国地图出版社) 41쪽.
『사기』 「조선전」에서 위만이 도읍했다는 왕험王險의 주석은 그 위치를 창려昌黎라고 하였다. 45)
창려는 난하 동쪽에 있는 지명으로 한나라 때 요서군 교려현交黎縣이 었다고 하였다. 창려에 왕험
성이 있었다면 난하 또한 패수가 될 수 없다. 난하가 패수라면 창려의 왕험성이 국경과 너무 가까워
한나라 침략에 매우 취약해 진다. 한의 사자 섭하渉何가 패수를 건너자마자 요새로 들어갔다고 하
였으므로 위만조선의 도읍이 국경을 맞대고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위만이 망명하여 준왕으로부터
처음 허락받은 서쪽 변경인 상하장 100리의 공간이 들어설 자리 없다. 그러므로 패수는 난하보다
더 서쪽에 있어야 한다.
창려에 왕험이 있었다는 기록을 신뢰한다면 진한대의 요동은 난하 서쪽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요동이 위만시기의 요동과 같다면 왕험성이 한나라 영역 안에 있는 것이 되므로 창려에 왕
험성이 있었다는 기록을 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는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이후 이 지역에
서 행정구역을 새로 설치하면서 한 무제 이전 북경 가까이 있던 연의 요동군을 확장 또는 이동시켰
을 것이다.
진 장성 동단 기점은 주석에 따르면 낙랑군 수성현 갈석산이며, 이 갈석산은 지금 하북성 창려昌
黎 난하 하류 동안에 있다. 한고조 때 장성 동단은 진장성 동단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지키기
어려워 후퇴했다. 46) 진나라가 연나라를 합병하고 당시의 요동을 점령했다가 한나라 때 지키기 힘
45) 『史記』 「朝鮮列傳」. 王險: 集解徐廣曰 昌黎有險瀆縣也. 應劭注 地理志遼東險瀆縣, 朝鮮王舊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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