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8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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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상흠과 허신은 2세기경의 후한 시대 인물들로 당시 후한의 군현과 강에 대해 같은 기록을 남김
으로서 『사기』나 『한서』의 패수 내용을 보완해 주고 있다. 역도원과 동시대 인물인 배인도 패수는
동남으로 흐른다고 하였다. 역도원 당대까지 그 누구도 패수가 서쪽으로 흐른다고 하지 않은 것이
다. 그렇다면 역도원은 당연히 『수경』에 기록된 패수에 맞춰 지리고증을 했어야 했다.
『수경』에는 패수와 함께 이웃하여 흐르는 강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습여수濕餘水, 고하沽河, 포
구수鮑丘水, 유수濡水, 대요수大遼水, 소요수小遼水, 패수浿水의 순이다. 패수의 위치를 비정할 때
서쪽의 습여수부터 시작하여 동쪽의 패수 순서로 기록한 것이라고 여겨, 유수는 난하로, 대요수와
소요수는 지금의 요하와 그 지류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일부 대요수와 소요수는 대릉하나 소릉하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견해 역시 지금의 요하와 한대漢代의 요수가 동일하다는 고정관념의
결과일 뿐이다.
습여수는 상곡上谷의 거용관居庸闗 동쪽에서 나와 동남 방향으로 흐른다고 하였다. 또한 요수도
장성 밖 위백평산衛白平山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장성 안으로 흘러들어 요동 양평현 서쪽을 지나고
동남으로 방현 서쪽을 지나 마지막에 동쪽으로 안시현 서남쪽을 경유하여 바다로 들어가는 동남
방향으로 흐르는 강으로 나온다. 31) 요수에 대한 주석 역시 대요수와 소요수를 현재의 요하나 대릉
하로 보기에는 흐르는 방향이나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태항산맥이나 연산산맥에서 발원
하여 발해로 들어가는 하북성 북부 지역의 강들 설명으로 더 적합하다. 더구나 지금의 요하는 그
명칭이 구려하句驪河 32) , 압록鴨綠, 안민강安民江 33) 등으로도 불렸으므로 한나라 때 요수로 단정
하기 힘들다.
『한서』 지리지에서 ‘대요수는 새외塞外 즉 장성 밖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안시에 이르러 바다
로 들어간다.’ 34) 고 하였다. 지리지에서 말하는 패수와 요수는 장성 안으로 들어와 흐르는 강들이
다. 대요수가 지금의 요하라면 장성 밖에서 시작하여 다시 장성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요수는
『산해경山海經』에서 처음 언급되는데 그 방향 역시 동남쪽으로 흐른다. 35) 대요수가 사마천 시기
에 국경에서 가까운 중요한 강이었다면 『사기』에서 패수와 함께 언급되어야 정상이지만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역도원 당시 전해 내려오는 기록들은 전한 초기의 동북지역 국경선은 패수였고, 이 패수는 크게
31) 『水經注』. “濕餘水: 濕餘水出上谷居庸闗東. 東流過軍都縣南, 又東流過薊縣北. 又北屈, 東南至狐奴縣, 西入于沽河.
沽河: 沽河從塞外來. 南過漁陽狐奴縣北, 西南與濕餘水合為潞河. 又東南至雍奴縣西為笥溝. 又東南至泉州縣, 與清河合,
東入于海. 清河者, 派河尾也. 鮑丘水; 鮑丘水從塞外來, 南過漁陽縣東. 又南過潞縣西. 又南至雍奴縣北, 屈東入于海. 濡水:
濡水從塞外來, 東南過遼西令支縣北. 又東南過海陽縣, 西南入于海. 大遼水: 大遼水出塞外衛白平山, 東南入塞, 過遼東襄平
縣西. 又東南過房縣西. 又東過安市縣西南, 入于海. 小遼水: 又玄菟髙句麗縣有遼山小遼水所出. 西南至遼隊縣入于大遼水
也. 浿水: 浿水出樂浪鏤方縣, 東南過於臨浿縣, 東入于海.”
32) 『皇淸開國方略』, 卷17, “句驪河地〈句驪河為內遼河外遼河合流處, 一作栒栁河, 亦作巨流河.〉” 文淵閣四庫全書電子
版,
33) 『三國遺事』 興法 第三, 順道肇麗, “麗時都安市城, 一名安丁忽, 在遼水之北. 遼水一名鴨淥, 今云安民江.”
34) 『漢書』 「地理志」. 遼東郡: 大遼水出塞外, 南至安市入海, 行千二百五十里.
35) 『山海經』 「海內東經」. 潦水出衛皐東, 東南注渤海, 入潦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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