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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조선열전」에 나타난 패수 위치 고찰  정규철



                 에서 동남류하여 바다로 들어가는 강이 없다는 이유로 역도원이 『수경주』에서 패수가 서쪽으로

                 흐른다고 한 기록을 신뢰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이다.
                   근대에 들어 일제에 의해 한국사가 연구되면서 패수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루어졌다. 쓰다 소우

                 키치津田左右吉는 「패수고浿水考」에서 기존 조선 연구자들의 통설, 즉 『사기』 조선전의 패수는 압
                 록강으로 보고 『한서』 지리지의 패수는 대동강으로 보거나 양자를 모두 대동강으로 보는 견해를

                 비판하였다. 이외에도 일제 관학자들 사이에서는 압록강·대동강·청천강 등의 설이 제기 되었으나
                 대동강설을 통설화하였다.

                   신채호는 『한서』 지리지 낙랑군 부분의 本文과 本註가 모두 위조라고 하였으며, 평양과 패수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평양, 낙랑, 패수는 모두 ‘펴라’의 다른 표기로 보았다. 『사기』 조선전과

                 『위략』의 패수를 요동군 번한현의 패수沛水로 보고 그것을 해성海城 헌우락수蓒芋濼水에 비정하
                 였다. 요동군 험독현에 대한 응소應劭의 주에 따라 그곳을 왕험성(평양)으로 파악하여 해성에 비

                 정하였다.    14)  정인보는 패수를 『성경통지』에 따라 해성 어니하淤泥河(헌우락수)로 보고 해성이 험
                 독 조선현이라고 하였다.          15)

                   광복이후 한국 학계에서는 패수에 대해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으나 현재는 압록강설이
                 지지를 받는 경향이 있다. 이병도는 패수와 열수를 각각 국경하國境河, 국중하國中河로 파악하고

                 열수가 대동강이라는 것을 명확히 한 상황에서 패수의 위치를 비정하였다. 그렇지만 이 글은 패수
                 가 청천강이라는 것보다는 연燕·진秦과 고조선의 경계와 그 구조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즉 연·

                 진은 패수를 內界, 열수를 外界로 하여 그 사이에 일종의 완충 지대를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계와 관련해서 번한현의 위치를 박천으로 보고 번한현에 위치한 沛水를 대령강에 비정하였다. 마

                 지막 부분은 『수경』 패수 조에 대한 해명으로 되어있다.                    16)
                   윤내현은 위만조선과 전한의 국경이었던 진 장성의 동쪽 끝인 갈석산으로부터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난하가 있으므로 패수는 지금의 난하였거나 난하의 서부지류 또는 난하보다 다소 서
                 쪽에 있었던 어느 강이어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위만조선과 한의 국경을 이루었던 패수는 난하

                 보다 동쪽에 있는 강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고 하였다.                     17)
                   노태돈은 압록강을        18) , 오강원, 송호정은 청천강을, 김남중, 서영수, 박준형은 혼하渾河로 규정

                 하고 있다.
                   오강원은 중국 고고학계가 연燕·진秦 장성이 요하 유역인 의무려산 북쪽의 부신현阜新縣에 이르

                 렀다는 중국 학계의 고고학을 근거로 요서설을 부정하며 청천강설과 압록강설을 지지하고 있다.
                 그는 연진 장성의 동단은 요하 중류 유역까지 이르렀고, 연·진·한대 요동군은 현재의 요동 지역과



                 14) 申采浩, 「平壤浿水考」, 『朝鮮史硏究草』, (朝鮮圖書株式會社, 1929).
                 15) 鄭寅普, 「漢四郡役」, 『朝鮮史硏究』 上, (서울: 서울신문사, 1946).
                 16) 박성현(2015), 27쪽.
                 17) 윤내현, 『고조선 연구』 상 (서울: 만권당, 2005) 296쪽.
                 18) 노태돈, 「古朝鮮 중심지의 변천에 대한 연구」, 『韓國史論』 Vol.23, (199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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