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1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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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조선열전」에 나타난 패수 위치 고찰 정규철
한백겸韓百謙(1552~1615)은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1615년경)에서 『사기』 조선전에 패수
가 조선의 북쪽 경계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동강이 아니며, 지리지에 압록강은 마자수로 되어
있기 때문에 패수가 될 수 없다고 하면서, 압록강과 대동강 사이의 청천강을 패수로 지목하였다.
홍여하洪汝河(1620~1674)는 연나라 장수 진개秦開가 조선 서쪽 땅 2000 리를 빼앗고 경계로
삼은 만번한滿番汗을 지금의 요양遼陽으로, 한나라 초 조선과 경계로 삼았던 패수를 요양 서쪽에
8)
있던 요하의 여러 지류 중 하나로 간주했다. 이익李瀷(1681~1763)은 낙랑군 ‘재요동설’을 주장
하며, 『성호사설星湖僿說』 천지문天地門 패산浿滻 조에서 『한서』 조선전의 패수는 압록강이라고
9)
하였다.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 패수변浿水辨에서 패수를 대동강의 고
유한 명칭으로 보았고, 다른 강을 패수라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하였다. 다만 『사기』 조선전의
패수는 압록강이라고 하였다. 그는 패수에 대한 ‘견해’가 다섯이라고 하였는데, 첫째는 『사기』나
『한서』 조선전에서 압록강을 패수라고 한 것, 둘째는 대동강을 패수라고 한 것, 셋째는 예성강을
패수라고 한 것, 넷째는 한백겸이 청천강을 패수라고 한 것, 다섯째는 요동의 헌우락수蓒芋濼水를
패수라고 한 것이라고 하였다. 첫째 같은 경우 조선전의 ‘패수’가 압록강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하
다고 하면서도 명칭이 ‘잘못’되었다고 하였고, 신라 말 이후 예성강을 패수라고 한 것도 ‘잘못’이라
고 하였다. 즉 패수라는 지명은 오직 하나의 물줄기를 지칭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10)
한진서韓鎭書(1777~?)는 『해동역사속海東繹史續』 지리고地理考에서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았
는데, 따라서 왕험성을 성천부(대동강의 지류인 비류강 상류 방면)에 비정하였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은 『한서』 지리지 요동군 번한현의 패수沛水와 낙랑군 패수현의 패
수浿水가 음이 같으므로 같은 물인 듯한데, 패수沛水는 요동에 있어야 하며 패수浿水는 대동강이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의문을 제기하였다. 또 조선전의 패수는 내용상 요동에 있거나 압록강 혹은
청천강이 될 수도 있다고 하였고, 『삼국사기』의 패수는 임진강이나 한강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예전에 조선의 물을 다 패浿라고 칭하니, 이는 중국에서 북방의 물을 하河라 칭하고 남방의
물을 강江이라 칭하는 것과 같다.고 한 것을 읽었는데, 그 책의 제목을 잊어버렸다’고 11) 하였다.
즉 패가 강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라는 것이다. 12)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독특하게 이동설을 주장하였다.
是矣. 自唐後, 皆以大同江爲浿水, 而其實非漢縣之浿水也. 至於鴨綠卽馬訾也. 馬訾與浿水, 同時分見於樂浪玄菟二郡, 鴨
綠之非敗水明甚.“
8) 洪汝河, 『東國通鑑提綱』 「朝鮮紀下」. “按, 浿水在遼陽省西, 遼河甚衆, 浿水其一也. 東數千里, 今八州之地, 舊屬朝鮮,
悉爲箕氏所有. 周末爲燕略取, 置吏築鄣, 秦時空其地, 屬之外徼. 漢興還屬朝鮮, 復以浿水爲界. 東人稱大同, 亦曰浿水. 蓋
以平壤本遼陽舊號, 而移稱於箕都故, 浿水亦移稱於大同耳.”, 『고조선・단군・부여 자료집(상)』 (서울: 2005) 273쪽 참조.
9) 李瀷, 『星湖僿說』 2卷 天地門 浿滻, “如浿江, 㨿衛滿之渡浿, 則疑鴨綠也.”, 한국고전번역연구원 한국고전종합DB 참조.
10) 박성현, 「『한서』 지리지 낙랑군 3수의 비정에 대한 검토」, 『한국고대사연구』 79권, (2015), 18~9쪽.
11) 南九萬, 『藥泉集』 29卷, 雜著 浿水, “余昔時曾見一書. 云朝鮮之水皆稱浿. 猶中國北方之水稱河, 南方之水稱江. 今忘其
書名, 不能更考, 而此言稍有理可通. 姑記之以俟知者.”
12) 박성현(2015), 20~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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