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8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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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Ⅰ. 머리말
한 나라의 역사 연구에 있어서 역사지리 특히 지명의 위치 비정은 역사 영토 해석에 중요한 근간
이다. 한국고대사 역사지리에서 전한前漢과 위만조선의 국경을 이루는 패수의 위치는 지금까지
첨예한 논쟁 대상이다. 이것은 곧바로 고조선의 서쪽 경계와 연결되기 때문에 고조선을 다룬 많은
저술에서 패수의 위치를 언급하고 있다. 패수 위치에 관한 설은 한반도설(大同江, 淸川江, 鴨綠江),
요동설(淤泥河, 渾河), 요서설(大凌河, 灤河, 朝白河)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가운데 한반도설인
청천강설과 압록강설이 국내 학계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패수浿水가 위만조선과 한漢의 경계였다고 하였으나 그 위치에 대해서
는 말하지 않았다. 이 패수의 위치에 대해서 북위北魏의 역도원酈道元은 『수경水經』의 “패수는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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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군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들어간다.” 는 구절
을 의심하였다. 그것은 북위의 관리였던 역도원의 조상이 낙랑공이라는 작위를 받고 다스린 지역
이 낙랑군이었는데 당시 이 낙랑군에 패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고구려 사신으로부터 고구려
의 도성 남쪽에 패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이 패수는 동에서 서로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도원은 고구려가 옛 조선의 땅에서 일어났고 고구려의 도읍 역시 옛 조선의 도읍에 자리한 것으
로 여겼던 까닭에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는 『수경』의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패수
위치 비정의 오류가 시작되었다.
역도원이 생존하던 시기는 『수경』의 저자인 후한後漢의 상흠桑欽(2~3세기 전후)보다 400년 후
이다. 그런데 패수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기록을 우선으로 해야 함에도 많은 연구자
들이 방향과 위치를 다르게 기록한 후대 문헌인 『수경주』를 의심하지 않고 연구 비정해 왔다. 강은
시대에 따라 지명이동이 심한 편인데 후대의 문헌에 나타난 패수를 『사기』에 기록된 패수와 동일
한 강으로 취급함으로써 패수의 위치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오류로는 역사지리 연구에서 방위의 인식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방위는
거리와 함께 위치를 비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방위는 북쪽이 기준점으로 북을 나타내는
방위는 북극성을 기준으로 하는 진북眞北(지구 자전축의 북극 방향), 지도에서 나타내는 도북圖北,
나침반의 자석이 가리키는 자북磁北으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북쪽을 말할 때에는 진북을 가리키
는 것으로 고대에는 북극성의 위치를 기준으로 방위를 정하였다. 따라서 고대의 지리지나 기행 등
의 방위 기록은 진북을 기준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그런데 사료에 나타나는 수많은 방위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산천과 지형이 맞지 않게 되자 후대
의 연구자가 당대의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일이 생겨났다. 이러한 문제는 지리지의 내용
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강줄기의 흐름이나 해당 지명의 방위를 이해하는 부분에
1) 『水經注』 浿水, “浿水源出樂浪郡鏤方縣, 流向東南, 過臨浿縣, 東入于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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