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6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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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무휼, 미류)은 그들의 재위연간에 있었던 부여정벌에서 공통성이 있고, 또 ‘유류-유리’처럼 ‘막래

                 -무휼, 미류’ 사이에도 약간의 유사성이 있는 것을 이용하여 두 왕대의 사실을 대무신왕조에 압축·
                 중복하여 기록하였다고 보인다. 여률왕의 경우   삼국사기  에 대응하는 왕이 보이지 않는데 이것

                 은 유리왕과 대무신왕 사이에는 들어갈 자리가 없으며 또 그의 통치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으므
                 로 한두 개 사건을 유리왕조 기사에 포함시켜 처리해 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대주류왕

                 의 아들도 같은 방법으로 즉   삼국사기  모본왕(대무신왕의 아들)의 딴 이름 ‘해애루’에서 찾아 ‘애
                 루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삭감된 다섯의 왕 중에서 유류, 여률, 막래, 애루 등 네

                 명은 찾아낸 것이다. 다만 유류, 여률, 막래왕이 3세대=3왕대로 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막래왕, 애
                 루왕과 그 아들 3세대 간은 형제간이 국왕이 되었던 일이 있었을 수 있다.

                   찾아내지 못한 한 명의 왕을 포함한 5세대의 왕들의 재위기간은   삼국사기  연표에서 고구려왕
                 세계를 따져보면 알 수 있다. 유리왕 때부터 5세대가 되는 동천왕 때까지는 기원전 19년에서 기원

                 248년으로 267년간이며 1세대당 평균 53.4년이 된다. 물론 태조대왕, 차대왕, 신대왕처럼 형제
                 간에 126년이나 왕위에 있었던 특수한 경우도 있었으나, 유리왕에서 동천왕 사이의 실례를 적용

                 하면 5세대 왕의 통치는 267년까지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느 해에 추모왕이 건국하였는가를
                 규정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은   구삼국사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제왕운기  등에 추

                 모왕의 출생, 즉위, 사망연대의 간지를 한결같이 계해년, 갑신년, 임인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
                 서 갑신년을 기준으로 하여 어느 해에 건국하였는가를 따져보면 될 것이다. 이미 앞에서 고구려가

                 기원전 221년경에는 진나라와 직접적인 경계를 가지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몇 해 후에는 직접적
                 인 경계를 접하게 된 것이 확실하므로 고구려는 기원전 221년 전·후로 큰 나라가 되었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고구려가 건국한 것은 기원전 221년 이전의 갑신년으로 기원전 277년과 기원전 337년
                 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원전 337년은 이제까지 전해진 고구려의 건국연대인 기원전 37년

                 에 비해 300년이나 앞서게 되므로 위에서 말한 5세대의 재위 기간인 267년보다 현저하게 길다.
                 그런데 기원전 277년으로 본다면 고구려의 존립기간은 945년으로 <유국 900년 설>에 가까울 뿐

                 만 아니라 위에서 제시한 재위 기간인 267년보다 27년이 짧다. 따라서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므
                 로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기원전 277년으로 보아야 한다.”                     13)



                   3) 신용우의 기원전 217년론(論)



                   신용우는 북한 손영종의 이론에 공감하면서도 삭감된 5세손 왕의 재위 연수를 도출하기 위해서

                 10명 왕의 재위 연수를 합산한 것은 무리이며, 굳이 5세손 10명이라는 단어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찾아내지 못한 왕을 찾아낸 후에, 감안할 것을 감안해서 설정된 왕의 숫자만큼 재위 연수를 합산하

                 는 것이 옳다는 이론하에 삭감된 왕 중 하나를 태조대왕으로 지목하고 다음과 같은 이론을 펼쳤다.

                 13) 손영종, 「고구려 건국년대에 대한 재검토」,   력사과학  루계133호, (1990), 40~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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