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4 - 국제학술문화제-동북공정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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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분과
Ⅲ. 고구려 건국연대 재정립론에 대한 검토와 비정(批正)
1. 고구려 건국연대 재정립론 검토
1) 고구려 건국연대 소급 필요성에 대한 일반론(一般論)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 건국연대는 기원전 37년으로 기원전 57년에 건국되었다고 기록된
신라보다 20년이 늦다. 이에 대해서 신채호를 비롯한 많은 학자는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이
신라 우월주의로 인해서 고구려 건국연대, 특히 초기 역사를 삭감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고구려 건국연대가 소급되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1) 세손삭감
광개토대왕릉비에 광개토대왕이 시조 추모왕의 17세손으로 되어있는데, 삼국사기에 의하면
12세손이 되므로 5세손이 10)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초기에 재위했던 왕에 대한 기록을 삭
감하거나 다른 왕과 합해서 기록함으로써 역사를 축소해서 건국연대를 늦췄다는 것이다.
(2) 유국 900년 설
고구려가 건국 900년이면 멸망할 것이라고 고구려비기(高句麗秘記) 에 적혀있다는 설이다.
이것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보장왕 27년조에 “당나라 군사가 부여성을 점령하고 부여주 40
여 개의 성이 모두 항복하겠다고 했을 때, 당 고종의 임무를 받고 요동에서 귀국한 시어사(侍御史)
가언충(賈言忠)에게 고종이 군 내부사정을 묻자 가언충이 승리를 다짐하는 발언 중에 ‘ 고구려비
기 에는 9백년이 되지 못하여 마땅히 80대장이 멸망시킨다.’라는 말이 있는데, 고씨가 나라를 세
운지 9백년이고 이적의 나이가 80입니다.’라고 했다” 11) 는 것이다. 이 말은 전쟁을 위해서 나름대
로 많은 연구를 통해 준비했을 적군의 장수가, 고구려가 건국 된지 900년이 되었다는 것을 밝혀
준 것으로, 고구려가 멸망하던 668년(기원전 37년 건국 후 705년)에 나온 말이니 고구려의 건국
연대가 200여년은 앞당겨져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이다.
10) 이것은 신채호의 13세손과 1세가 차이가 나지만, 그것은 시조 추모왕을 포함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흔히 세손을
따질 때 시조를 포함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세손을 계산하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이 문제에
대해서 북한 손영종은 “ 가락국기 에서 보는 것처럼 제2대부터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라 5세가 누락이 되었다
고 본다”고 했다; 손영종, 「고구려 건국년대에 대한 재검토」 력사과학 루계133호, (1990), 41쪽.
11) “且高句麗秘記曰 不及九百年 當有八十大將 滅之 高氏自漢有國 今九百年 勣年八十矣;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
터 베이스<http://db.history.go.kr/>, 三國史記 「卷第二十二 髙句麗本紀 第十」, 2018. 7. 1.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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