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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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사료로 살펴본 살수, 선춘령, 공험진의 위치 고찰 신민식
발생한다.
식민 사학계에서 15대 미천왕 313년에 멸망 당했다고 주장하는 낙랑이 B.C 107년 부터 A.D
313년간 약 420년 동안 지금 북한의 평양에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북한의 평양으로 동천왕이 A.D
247년에 천도를 했다는 황당한 사실이 일어난다. 즉, 동천왕이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뒤에
한사군이 있었다고 하는 북한의 평양에 다시 도읍을 정한다는 비상식적인 학설이 된다. 그 이유는
일본 학자와 일부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한사군의 ‘낙랑군 북한 평양설’과 ‘고구려 북한 평양설’ 둘
다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존 학설에 대해 복기대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동천왕이
도읍을 옮긴 것은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인데, 위나라 행정구역 안에 있는 낙랑군 바로
옆에다 고구려의 도읍을 정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32)
< 그림1: 한사군 낙랑과 동천왕 평양이 같은 지역에 있었다는 모순된 지도>
<그림1>에서 보여주듯이 북한 평양에 낙랑군과 고구려 수도가 같이 있었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런 모순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살수’, ‘고구려 수도 평양’의 지명을 한반도 내에 국한 시키
려고 하는 반도사관인 식민사관의 한계점에서 오는 것이다.
2. 선춘령, 공험진 한반도설로 생긴 왜곡된 고려 국경
선춘령과 공험진은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태종은 1404년에 공험진 이남을 조선이 관할하겠다고 명나라에 보내 김첨을 통해 요청을 하였
다. 그 이듬해인 태종 5년(1405)에 명에 파견한 예문관 대제학 이행(李行)을 통해서 공험진 이남을
32) 복기대, 「고구려 도읍지 천도에 대한 재 검토」, 『단군학연구(22)』, 단군학회, (2010), p.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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