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P. 70
환단고기 분과 1
는 얘기가 없고 살수는 안주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성종실록에 와서 살수가 청천강이라는 얘기를
9)
구체적으로 언급을 한다. 이병도는 살수를 신라 상주 삼년산군에 있는 살매현(薩買縣)이나 충북
괴산 청천면, 청원 미원 일대로 비정했다. 그런 주장을 하다가 살수의 ‘살薩’이 청백(淸白)을 뜻하
는 ‘햘(Hsial)’을 표기한 것이라는 설을 제기하면서 오늘날의 청천강으로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의
경계를 흐르는 강으로도 비정을 했다. 10) 이와 같이 이병도는 ‘충북 괴산설’과 ‘평안도 청천강설’이
라는 두 가지 주장을 했다. 정구복은 살수를 청천천(靑川川: 박대천)으로 보았다. 정구복은 청청천
이 현재 충북 괴산군 청천면 청천리를 지나고 충주로 들어가는 달천의 상류인데, 옛 지명이 살매현
(薩買縣)이라고 했다. 이곳은 신라 경덕왕부터 고려 시대에도 청천현(靑川縣)이라고 불리웠다는 것
이다. 사카이카이조(酒井改藏)는 살수를 옛 지명인 살매(薩買)와 같은 의미로 보았고, 살수와 살매,
청천이 모두 같은 의미라고 했다.
위의 연구들은 살수가 청천강이나 박대천같이 한반도 내의 강이라는 ‘살수 한반도설’이다. 이에
반해 요양의 수계(水系)에 해당하는 혼하가 살수라는 ‘살수 혼하설’이 있다. 위의 학설은 삼국사기
와 중국 사서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예를 들면 『삼국사기』에서 살수를 반 정도 건너는 수나라
군사의 뒤를 공격해서 신세웅을 죽이고 괴멸시켰다고 했다. 그때 수나라 군사가 하루 밤낮 도망쳐
서 450리를 지나 압록수에 도달했다고 했다. 11) 위 사료로 볼 때 살수와 압록수(鴨綠水) 거리는
450리라는 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와 동일한 내용으로 『북사北史』에서도 구군(九軍)이 패퇴하
면서 하루 밤낮으로 도망가는데 450리를 지나서 압록수에 도달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12) 그리고
『수서隋書』, 『북사北史』에서도 살수의 위치를 비정할 수 있는 자료들이 보인다. 그것은 “동쪽으로
살수를 건너서 평양성으로부터 30리 떨어진 곳에 산을 기대고 진을 쳤다”는 내용이다. 13) 『대명일
통지』에서는 살수의 서쪽은 압록수이고 동쪽은 평양성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그곳에서 신세웅이
죽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14) 전요지 , 요동지 의 두 문헌은 명나라의 관찬 지리서이자 병서인데
여기에서 살수를 ‘요양(遼陽)의 산천’으로 분류하고 있다. 명나라의 대표적인 관찬 지리서인 대명
일통지 권25 「요동도지휘사사」 “산천”조에 살수는 요동도사(遼東都司) 관할지역의 산천으로 소
개하고 요양 인근의 하천으로 설명한다. 15) 이런 삼국사기와 중국사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평양,
살수의 위치를 재 비정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김진경은 고구려를 공격하는 수나라 군사가 요수(遼水)를 건너야 했다는 것에 주목을 하여 요수
9) 『세종실록』 「地理志」 주석에서도 청천강을 언급하고 있다.
10) 이병도, 『국역 삼국사기(상)』 , (서울:을유문화사, 1996), 353쪽. 오늘날의 청천강으로 평안남도와 평안북도의
경계를 흐르는 강이다. 낙랑군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하천이기도 하다. 살수의‘살(薩)’이 청백(淸白)을 뜻하는‘햘(Hsia
l)을 표기한 것이다.
11) 『三國史記』 卷第四十四 列傳 第四 乙支文德, 至薩水軍半濟, 文德進軍撃其後軍. 殺右屯衛將軍辛丗雄於是諸軍俱潰,
不可禁止九軍將士奔還. 一日一夜至鴨渌水, 行四百五十里.
12) 『북사北史』, 「 卷七十七」 「列傳第六十五」 九軍敗績, 一日一夜, 還至鴨綠水, 行四百五十裏.
13) 『수서隋書』, 「列傳第二十六」 東濟薩水, 去平壤城三十里, 因山爲營.
14) 대명일통지 권29 「요동도지휘사사」“산천”조, 삼진三秦 출판사, 427쪽.
15) 대명일통지 권29 「요동도지휘사사」“산천”조, 삼진三秦 출판사, 427쪽.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