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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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분과 1


                 30리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다는 내용을 볼 때 살수와 평양성은 서로 위치 비정을 하는데 깊은 관련

                 이 있다.
                   삼국사기에 고구려 수도 평양으로 천도를 7~8번 정도 하는데 그중에서 평양의 이름이 4회 정도

                 나온다. 평양이란 지명은 평(平)이란 ‘평평한’ 또는 ‘평원’이라는 뜻이다. 양(壤)이란 ‘땅, 토지, 경
                 작지’란 뜻이다. 즉 ‘평평하고 넓은 경작지 토지’라는 뜻으로 고유명사이면서도 보통명사이다. 이

                 런 의미에서 고구려의 평양은 일정한 장소가 아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넓은 지역의 경작지’인
                 수도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인식하면서 사료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평양이 왜

                 중요하느냐는 평양의 위치가 비정이 되면 살수의 위치가 비정이 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사료에
                 나오는 평양을 모두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도표가 된다.




                     차례                 왕                            지역                        연도

                     1대              추모왕1년                         졸본(卒本)                   기원전 37년

                     2대             유리왕22년                   국내성(國內城)으로 천도                     3년

                     10대            산상왕13년                         환도(丸都)                     209년

                     11대            동천왕21년                       평양(平壤)천도                     247년

                     16대         고국원왕12년 8월                    환도산성(丸都山城)                     342년

                     16대         고국원왕13년 7월                    평양 동황성(東黃城)                    343년

                     20대            장수왕15년                         평양(平壤)                     427년

                     25대            평원왕28년                     평양 장안성(長安城)                    586년‘

                                      도표1 <삼국사기에 고구려 천도중 4번 나오는 평양>              31)


                   평양이라는 이름이 같다고 해서 같은 위치로 비정 한다면 ‘똑같은 자리’로 계속 천도했다는 모순

                 이 생긴다. ‘살수 청천강설’로 본다면 수나라 군사가 청천강인 살수를 지나 나온 평양은 현재 북한
                 의 평양이다. 그런데 청천강이라고 하는 살수를 지나 나오는 평양을 북한의 평양으로 인식할 때

                 다음과 같은 모순점이 발생한다. 동천왕이 북한의 평양으로 천도한 시기가 247년이고 고국원왕
                 이 평양에서 나와 환도산성으로 나간 연도가 342년이다. 95년 동안 북한 평양에 고구려 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나라의 낙랑군이 BCE 107년부터 AD 313년까지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낙랑군은 한 무제가 BCE 108년에 위만의 손자인 우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 세

                 운 한사군 중 하나이다. 식민 사학계에서 주장하는 낙랑이 북한의 평양이고 그 낙랑 옆에 패수가
                 있기에 대동강 패수설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고구려 북한 평양설’과 ‘낙랑 북한 평양설’의 모순이


                 31) 복기대, (2010), pp. 20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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