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5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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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해례』와 『환단고기』의 유사성에 대한 고찰  송옥진



                    드디어 임금께서 상세한 풀이를 더하여 모든 사람을 깨우치도록 분부하시었다. 이에 신(정인지)

                    이 집현전 응교 최항, 부교리 박팽년, 신숙주, 수찬 성삼문, 돈녕부 주부 강희안, 행 집현전 부수
                    찬 이개와 이선로 등과 더불어 삼가 여러 풀이와 예(보기)를 만들어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24)



                   게다가 이에 덧붙여서 훈민정음을 만든 세종에 대한 헌사로써 세종을 황제에 버금가는 인물로

                 추앙한다. 이는 성삼문과 신숙주가 사신과의 대화에서 당시 명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과거제도를
                 본따고 장원한 자의 명칭조차 명나라 갑과(甲科)라고 부르니 감히 같게 부르지 못하고 조선에서는

                 을과(乙科)라 부른다고 답하는 기록             25) 과는 전혀 상반된 입장이자 표현이다.



                    삼가 생각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린 성인으로서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심이 모든 왕들
                    을 초월하셨다. 정음을 지으신 것도 이전 것을 이어받지 않고 자연에서 이루어 내신 것이다. 지

                    극한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어찌 사람이 사사로이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동방에 나라
                    가 있은 지 오래 되었으나 만물을 개발하고 모든 일을 이루어 내는 큰 지혜는 오늘을 기다리고

                    있었도다.   26)



                   당시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정치적 신념으로 지켜야했음에도 세종에 대한 추앙은 당대 정치 질
                 서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인 기술인데 이것은 그 자체로 한자에 대립 되는 새로운 문자를

                 만든 것은 오로지 세종의 명에 의한 것임을 밝히는 방어논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책임 소재를
                 세종에게 돌림과 동시에 세종의 훈민정음 사상과 논리적 전개에 철저히 동의했음을 의미한다.                                    27)

                 동시대 집현전 학사이자 사대부였던 부제학 최만리 외 6인의 갑자상소를 보면 이 시대, 세종의 논
                 리에 찬성하는 집단과 반대하는 집단이 모두 존재했으며 치열한 공방을 펼쳤음을 엿볼 수 있다.

                   최만리의 상소내용을 보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반대 입장은 중국을 섬기는 것에 맞지 않고 중
                 화를 사모하는데 부끄러울 뿐 아니라 글자의 형상을 모방하였다 하여도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것에 반하여 안된다는 것이다.                28)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음을 쓰고 글자를 합하는
                 것이 모두 중국으로부터 인정될 수 있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즉, 명나라가 온전히 유사함을 찾

                 을 수 없다는 것이고 이것에서도 훈민정음이 한국 전통의 고유한 사상과 체계를 갖고 있음을 나타



                 24) 김유범 외, 『쉽게 읽는 훈민정음』, (서울: 국립한글박물관, 2020), 85쪽, “逐命詳加解釋 以喩諸人. 於是 臣與集賢殿
                 應敎臣崔恒 副敎理臣朴彭年 臣申叔舟 修撰臣成三問 敦寧府注簿臣姜希顔 行集賢殿副臣撰李塏 臣李善老等 謹作諸解及例
                 以敍其傾槪.”
                 25) 세종실록 127, 세종 32년 윤 1월 3일(출처: 조선왕조실록 http://sillok.history.go.kr)
                 26) 김유범 외, 『쉽게 읽는 훈민정음』, (서울: 국립한글박물관, 2020), 86쪽, “恭惟我殿下 天縱之聖 制度施爲超越百王.
                 正音之作 無所祖述 而成於自然. 豈以其至理之無所不在 而非人爲之私也. 夫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盖有待
                 於今日也歟.”
                 27) 김슬옹(2018), 160쪽.
                 28) 세종실록 103, 세종 26년 2월 20일.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이 언문 제작의 부당함을 아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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