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2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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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분과 2


                    다. 이렇게 되어 나라는 없어지고 말았다. 이때가 재위한지 30년이니 단검신인이 나라를 처음

                    세운 후 47세를 이었으며 역년은 1195년            55) 이다.
                    그 후로는 제후들이 서로 무력으로 다투었는데 홀로 남후만이 다른 제후들보다 뛰어나서 언제

                    나 군후를 거느리고 나라다운 행정을 펴서 열국이 되었다.                   56)



                   고려에서 조선시대까지 역사체계의 인식 변화를 고려하여, 각 사서의 저술 시기를 추측해보면,
                 『단기고사』는 기자조선을 강조한 조선시대나 근대에 쓴 것으로 보인다. 『단군세기』와 『규원사화』

                 는 차이나에서 기자조선이 삽입된 사서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기원전 3세기 이전의 우리 고유사서
                 를 바탕으로 썼거나, 혹은 기자조선의 실체를 부정하기 시작한 신채호, 이상룡 등 민족사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근현대 이후에 쓴 것으로 보인다.



                     4. 제왕운기와 삼국유사의 원형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  단군이  무진(BCE  2333)년에  즉위해서  을미(BCE  1286)년까지

                 1028년(1048년의 誤記) 동안 이어졌고, 공백기(164년)를 거친 뒤에 ‘주 무왕 원년 기묘(BCE
                 1122)년’에 기자가 동래(東來)해서 928년 동안 다스렸다고 서술했다. 그런데, 단군 1028년과 기

                 자 928년을 합치면 1956년이 되므로 『삼국유사』의 ‘단군 1908세’와 맞지 않고, 『고려도경』의 ‘기
                 자 8백여 년’   57) 과도 맞지 않는다. 따라서, 이승휴가 역년을 엄밀하게 따져보지 않고 다른 사서를

                 그대로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유사』에서도 ‘당요 즉위 50년(BCE 2308)’에서 1908년이 지
                 난 때는 BCE 401년으로 위만의 정권찬탈이 일어난 해(BCE 194년)와 230년의 공백기가 생긴다.

                 이렇게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연대의 오류가 생긴 이유는 『고기』나 『본기』 등 저본의 기록이
                 잘못됐거나, 저본의 일부만 인위적으로 인용해 편집하면서 생긴 오류로 보이는데, 다른 무엇보다

                 도 기자동래설과 기자조선을 넣기 위한 의도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의 ‘단군 1908세’와 ‘백악산, 장당경’의 도읍 지명(地名), 『제왕운기』의 ‘은 무정 8년

                 을미’ 등은 차이나 사서에는 보이지 않는 내용이므로, 일연과 이승휴가 봤던 고유 사서에는 더 상
                 세하면서 독자적인 기록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이 인용했던 고유 사서의 원형을 파악하기 위해서

                 는 앞서 말한대로 『삼국유사』에서 기자동래설을 위해 첨가한 ‘어국일천오백년(御國一千五百年)’
                 을 삭제하고 『제왕운기』에서 기자동래 전후의 ‘공백기 164년, 기자 928년’을 삭제하면 그 대강을

                 알 수 있다. 오류를 제외하고 추출한 사실들을 조합하면 아래와 같다.



                 55) 실제 역년은 1205년이다.
                 56) 북애, 고동영 역, 앞의 책, 1986.
                 57) “自子姓有國八百餘年, 而爲衛氏, 衛氏有國八十餘年(기자[子姓]가 나라를 다스린지 8백여 년 만에 위씨의 나라가
                 되었고, 위씨가 나라를 다스린 것이 80여 년이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권1 建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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