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6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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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 분과 2
봉할 적에도 신하로 삼지 않았던 것”이라는 「송설부보사환시서(送偰符寶使還詩序)」 등의 글을 지
었다. 38) 따라서, 강화도와 참성단은 고려 국난극복의 의지처였다.
권근의 『양촌집』에 실린 ‘참성에 대한 초례의 청사’를 보면, 당시 몽골과 왜구의 침입으로 큰 혼
란을 겪고 있는 상황을 단군에게 고(告)하고 왜적으로부터 사직과 백성을 지켜달라는 간곡한 서원
을 제문에 담았다.
참성(槧城)에 대한 초례의 청사
초헌(初獻)
바다 위에 산이 높아 멀리 인간의 번요함을 막았고, 단(壇) 가운데 하늘이 가까워 신령의 하감을
맞이할 만하기에, 약소한 제물을 드리오니 밝은 신령이 계시는 듯합니다.
이헌(二獻)
약소한 술을 따르며 두 번 베풀어 정성껏 드리오니, 가벼운 바람을 타고 먼저 이르러 밝게 감응
하사, 쾌히 흠향하고 많은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삼헌(三獻)
신령의 들음이 어둡지 않아 인간을 덮어 주고, 하늘을 양육이 사가없이 하토에 조림하니, 섬기기
를 예로써 하오매 드디어 감응하소서. 가만히 생각하건데 마리산(摩利山)은 단군을 제사하는
곳이라, 성조(聖祖)로부터 백성을 위하여 법을 세우사 옛 예절을 이어 아름다움을 드리우게 하
였고, 후왕(後王)에 미쳐서는 오랑캐를 피하여 도읍을 옮기사 또한 이를 힘입어 나라를 보전하
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국가에서는 그 예절을 지켜서 떨어뜨리지 않고, 소자는 그를 받들어 더
욱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왜적이 침입하여 우리 백성을 어육이 되게 하겠습니
까? 아무리 먼 지경을 침해를 받아도 오히려 표문(表文)으로 알리는데, 황차 그 도움이 없어서
그렇겠습니까? 실로 소자가 어질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다른 데 허물을 돌릴 수 없고 오직 자신
을 책망할 뿐입니다. 그러나 백성이 만약 그 생업에 안정하지 못하면 인은 의지할 곳이 없을 것
입니다. 이에 옛 법도를 따라 감히 당시의 환란을 고하오니, 미미한 정성이지만 밝게 하감하시어
바다에는 파도가 일지 않아 제항(悌航)의 모여듬을 자유롭게 하고, 하늘은 그 명을 도와 사직의
안전한 기반을 만들게 하소서. 39)
1232년 고려는 몽골의 침략에 대항해서 도읍을 강화도로 옮겼다. 지금까지 강화도 천도의 이유
는 ‘수전(水戰)에 약한 몽골이 직접 들어오지 못하므로 최적의 방어기지로써 강화도를 선택했다’
38) 김성환, 앞의 논문, 2013, 7~35쪽.
39) 권근, 『양촌집(陽村集)』 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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