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1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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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세기와 행촌 이암 박덕규
3. 고려 선가의 중심 청평산
청평산은 고려 초에는 경운산(慶雲山)으로 불렸는데, 선불(仙佛)에 정통했던 이자현(李資玄,
1061~1125)이 37년간 머물면서 청평산(淸平山)으로 고쳐 불렀다. 청평산에 위치한 청평사(淸平
寺)는 고려 초 개창된 백암선원(白岩禪院, 973년)을 이자현의 아버지 이의(李顗)가 중건하여 보현
원(普賢庵)으로 바꾸고 15) , 이자현이 다시 중창하여 문수원(文殊院)으로 바꿔 부르면서 16) 8개의 암
자를 지었다. 청평사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보우(普雨) 대사가 대웅전과 요사채 등을 신축하여 청평
사(淸平寺)로 개칭했다(1555년)는 설이 있지만, 1373년, 원천석이 44세 때 청평사를 방문하여 지
은 시 ‘청평사’가 남아 있기에 그 전부터 청평사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청평사(淸平寺)
돌계단 넘고 넘어 솔문에 닿으니
낮 염불소리 온 골짜기에 구름과 이어졌네.
한적한 곳에 안거하면서 무엇을 하시는가
깊은 복을 빌어서 우리 임금께 바치네 17)
청평사는 이자현이 주석하면서 고려 시대 선가(仙家)의 중심지 18) 이자, 거사불교(居士佛敎) 19) 의
요람이 되었다. 이자현의 호는 식암(息庵), 청평거사(淸平居士), 희이자(希夷子) 등인데, 희이(希夷)
는 노자 『도덕경』에서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道의 본체’ 20) 를 말한다. 이자현의
희이(希夷) 사상은 유불선 삼교회통을 주장했던 「三聖紀全」下의 저자 원천석(元天錫)의 詩에도 나
타난다.
많고 훌륭한 도리의 문은 깊고 오묘한 세계로 이어지나니
하늘을 불러 서로 호응하니 이 아니 신선인가,
진실로 내 몸을 닦아 마침내 진리의 본체[希夷]를 깨닫노니,
둘러보는 물빛과 산빛이 온통 고요할 뿐이다. 21)
15) 『楡岾寺本末寺誌』, 「淸平寺誌」
16) 『破閑集』, 卷 中, 眞樂公李資玄.
17) “排鱗松磴到松門 午梵聲連一洞雲 閒寂安居何日用 但將玄福奉明君” (『운곡시사(耘谷詩史)』, 청평사(淸平寺))
18) 김홍삼, 「청평사(淸平寺)와 고려사회구조(高麗社會構造)」, 『강원문화연구』23(0), (2004), 132쪽.
19) 스님이 아닌 일반 속세의 남자
20) “視之不見 名曰夷 聽之不聞 名曰希 搏之不得 名曰微(道라는 것은, 보아도 보이지 않아 이름하여 夷라 하고, 들어도
들리지 않아 이름하여 希라 하며, 잡으려 하나 잡을 수 없는지라 이름하여 微라 하느니라.)”(『道德經』十四章)
21) “衆妙之門玄又玄 眞機神化應呼天 精修直到希夷地 水色山光共寂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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