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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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사기   강수열전 정역을 통한 임나가랑의 위치비정  이완영



                   강수열전에는 강수의 아버지는 석체(昔諦)임을 명시하여 강수가 석씨(昔氏)의 후손임을 밝혀 놓

                 았다. 그렇지만 기존의 연구 대부분이 석체를 성과 이름으로 인식하지 않고 이름으로 인식하였다.
                 자료의 빈곤과 더불어 조선총독부시기부터 강수는 임나출신이라는 논지 때문이었을 것으로 생각

                 된다. 그렇기에 강수와 임나가랑의 관계는 그의 뿌리 석씨(昔氏)에 대한 이해부터 다시 정립되어야
                 한다.



                   2) 석탈해(昔脫解)와 강수(强首)와의 관계 논증



                   강수는 강씨(强氏)나 임씨(任氏)가 아니다. 그의 성은 기록상 석씨(昔氏)임이 명확하다. 그의 기

                 록은 월성(경주)석씨 족보에 명확히 등장한다. 석(昔)씨는 석탈해를 시조로 하는 월성석씨(月城昔
                 氏)가 있다. 석탈해 후손인 신라 11대왕 조분 이사금의 3남인 6세 석지(昔祉)후손으로 16세 석오

                 원(昔五源)이 있다. 그는 첨성대와 분황사를 건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석오원의 차남이 석체(昔
                 諦)로 곧 강수의 아버지이다. 그렇기에 강수는 석탈해의 월성석씨 18세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월성(경주) 석씨 대동보에 기록되어 있는 석체와 그의 아들 강수



                   3) 강수열전의 본(本)의 정역(正譯)으로 보는 강수와 임나가랑과의 관계



                   이로써 강수열전에 기록된 강수가 성씨로 언급한 신본임나가라인(臣夲任那加良人)의 본(本)의
                 의미가 명확해 진다. 강수는 자신의 뿌리인 석씨를 본으로 태종대왕에게 아뢴 것이다. 그리고 그

                 석씨가 임나가랑인이라는 것이다. 강수열전에 본(本)에 주목한 이가 이병선이었다. 그는 본의 개
                 념을 ‘본관(本貫)’,‘관향(貫鄕)’으로 파악하여 대마도로 비정되는 임나가랑인으로 보았다.                             34)  본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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