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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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분과 1


                 김태식은 국원소경으로 이주한 귀족과 6부 호민 중 532년에 신라로 이주한 금관국 왕족과 후손의

                 일부일 가능성을 제시         26) 하며 강수의 국원으로의 이주배경 연관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김수진
                 도 진경대사탑비의 임나의 용례를 통해 임나를 김유신의 출신지 금관가야로 보았다.                                27) 연민수는

                 임나가랑을 일본서기의 임나로 인식하며 임나가랑을 가야제국으로 보았다.                               28)  김현길은 진흥왕
                 23년(562) 신라에 정복되자 강수의 선대가 중원(忠州)지역으로 옮겨 살게 된 것으로 풀이했다.                               29)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임나가랑은 고령의 대가야인 밈라가라로 강수의 충주는 밈라가야인 대
                 가야가 천도한 것으로 보았다.           30)  최재석은 강수는 신라속국 임나사람으로 가라에 와서 살다가 중

                 원경으로 옮겨 생활한 인물로 해석하였다.                 31)
                   여기서 그동안 주목을 받지 않았던 강수의 성(姓)을 다시 살펴보고 본문을 논하고자 한다.



                     2. 강수열전에서의 본(本)에 대한 정역(正譯)



                   1) 강수의 성(姓) 정립



                   강수의 성은 강수(强首)에서 보듯 강씨(强氏)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강수의 원래 이

                 름은 그의 머리형태로 지은 “ 우두(牛頭)”라는 이름이었다. 태종무열왕이 강수를 총애하여 성(姓)
                 을 임나가랑인의 후손이기에 임씨(任氏)로                32) , 이름은 강수(强首)로 내려 주었다.         33)  임씨(任氏) 성
                 (姓)을 사성(賜姓)받았기에 임강수(任强首)라고도 보았다. 만생보(萬生譜)에는 충주강씨(忠州强氏)

                 가 있지만 그 족보에는 강수는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강수는 임씨를 사성 받았지만 사용하지 않았

                 다. 이러한 강수의 성에 명확한 파악이 안 되고 이견이 생긴 이유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강수관련
                 문헌연구가 기본적으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 강수열전에는 명백히 강수의 성을
                 기록하고 있다.



                                            『強首, 中原京沙梁人也. 父昔諦奈麻』

                              강수는 중원경사량부 사람이다. 아버지는 석체(昔諦) 나마(奈麻)였다.
                                          <<三國史記 卷第四十六 列傳 第六 强首>>




                 26) 金泰植, 「廣開土王陵碑文의 任那加羅와 安羅人戌兵」,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4). 65쪽
                 27) 김수진, 「6세기 신라의 영역확장과 이주자」, (한국학연구 제 55집, 2019). 429∼454쪽
                 28) 이계황 외, 「기억의 전쟁」,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3)
                 29) 김현길, 「忠州地域의 歴史地理的 背景」, (國史館論叢 第16輯, 1990)
                 30) 신채호, 「조선상고사」, (동서문화사, 1977). 262쪽
                 31) 최재석, 「일본고대사연구비판」, (일지사, 1990). 158쪽
                 32) 『三國史記 卷第四十六 列傳 第六 强首』 使製迴謝唐皇帝詔書表, 文工而意盡. 王益竒之, 不稱名, 言任生而已.
                 33) 『三國史記 卷第四十六 列傳 第六 强首』 王驚喜, 恨相見之晩. 問其姓名, 對曰, “臣夲任那加良人, 名字頭.” 王曰, 見卿頭
                 骨, 可稱強首先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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