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 - 국제학술문화제-가야사/환단고기 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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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강수열전 정역을 통한 임나가랑의 위치비정 이완영
삼국사기 강수열전 정역을 통한
임나가랑의 위치 비정
三國史記 强首列傳 正譯을 通한 任那加良의 位置 比定
1)
李浣榮*
Ⅰ. 서론
Ⅱ. 강수열전 선행연구사
Ⅲ. 강수의 태생에 대한 기존의 논지와 새로운 방향성
1. 강수 태생의 제연구
2. 강수의 태생과 성(姓)에 대한 기존의 논지와 새로운 방향성
Ⅳ. 강수열전의 임나가랑의 새로운 위치비정
Ⅴ.맺음말
【요약문】 한국 가야(伽倻)는 일본서기 임나(任那)와 혼용되어 인용되고 있다. 어느 한 편으로는 삼국
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의거하여 김수로의 가야사는 약화되거나 부정되고 일본서기 임나사가
마치 가야사인 것처럼 주객이 전도된 경향이 농후하다. 한국사에 임나존재를 거론하는 주된 논리
는 광개토왕태왕비문의 ‘임나가라(任那加羅)’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강수열전의 ‘임나가랑(任那
加良)’, 그리고 창원에서 발굴된 진경대사탑비의 진경대사의 선조 ‘임나왕족(任那王族)’이란 기록을
통해서이다. 현재의 가야관련 학술 대부분의 논지는 한반도에 임나는 존재하였고 그것이 가야라
는 바탕을 깔고 지명 비정과 삼국과의 연계 논리를 발표하고 있다.
에도시대부터 불기 시작한 국학의 붐은 일본의 명치시기에는 대륙진출을 위한 역사논리, 조선
지배를 위한 정한론 합리화 논리를 광개토태왕비문과 일본서기가 본격 연구되었다. 1920년에는
조선총독부의 국정교과서격인 심상소학국사보충교재, 심상소학 일본국사보충교재 교수참고서
를 통해 한국사의 가야는 일본서기 임나로 확정되어 조선인에게 교육되었고 이후 이에 대한 철저
한 문헌 검증 없이 현재까지도 일본서기 임나가 가야와 동일정치체제인 양 확정된 것처럼 논하며
위치까지도 임나소국이 가야에 비정되고 있기에 가야와 임나의 문제는 한일 양국의 미래에 심각
한 논쟁거리로 부각될 수 있다.
본 논고에서는 임나의 남부존재의 근거로 사용된 상기 임나와 연관성이 있는 세 가지 기록물이
과연 가야를 일률적으로 지칭하는 기록인지, 그리고 그 위치를 현 가야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합당한지를 강수열전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으며 정역(正譯)을 통한 연구를 통해, 그동안 아무런 연
* 인하대학교 대학원 융합고고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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