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대한사랑 14호(2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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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것이 몽골의 침공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고자 만들어진 해
인사(경남 합천)의 팔만대장경입니다. 제작 기간은 약 16년이며, 경판의 수
가 무려 81,258개나 됩니다. 이토록 방대하게 제작된 목판은 세계적으로
도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문화적 가치가 높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
로 지정되었습니다.
목판인쇄술은 손으로 쓰는 것에 비하면 획기적인 기술이지만, 불편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금속으로 글자를 새겨 조합해 인쇄
하는 활판인쇄술입니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은 고
려의 백운 스님이 선불교에서 내려오는 부처와 고승의 가르침을 모아 만
든 책으로 상권과 하권으로 만들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 하권입니
다. 본래 우리나라에 있던 『직지심체요절』은 1887년 한국에 온 초대 주한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Colin de Plancy)에 의해 수집되어 프랑스로 건너
갔습니다. 훔쳐간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구입해 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
니다. 이후 앙리 베베르(Henri Vever)가 직지를 사들였고, 그의 유언에 따라
1950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 프랑스에 있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입
니다. 하지만 구한말과 일제시대 때의 혼란을 생각하면 프랑스가 직지를
보유했기 때문에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어
서 어쩌면 프랑스의 보유가 다행이 아닐까 합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서고에서 조용히 잠자던 직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당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일하던 박병선 박사였습니다. 그녀는
‘세계 도서의 해’ 기념 도서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서고를 살펴보던 중 ‘직지
심체요절’이라고 쓰여 있는 작은 책을 발견합니다. 책에 남아 있는 미세한
금속 가루, 그리고 책에 쓰여진 제작 시기 등을 바탕으로 이 책이 금속활
자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연구로 직지는 세계 최초의 금
속활자본으로 공인받게 되었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
됐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의 위대함에 대한 경의로, 유네스코가 매년 세계
의 기록문화유산보호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상 이름이 ‘직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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