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대한사랑 14호(2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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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 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기술력과
문화적 측면에서 대단히 뛰어난 나라였다는 의미입니다. 25대 충렬왕 때
이르러 원나라에 굴복하여 스스로 왕으로 낮추어 불렀어도 고려의 우수한
문화와 기술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고려가 금속활자를 발명하긴 했지만, 목판인쇄는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목판인쇄는 조선 후기까지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으로 봤을 때는 목판인쇄술이 금속활자 인쇄술보다 여러
면에서 떨어져 보이지만. 목판본을 만드는 데 워낙 숙련된 기술을 보유하
고 있었기에 대단히 빠른 속도로 글자를 새겨 넣을 수 있었고, 큰 불편함
이 없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금속활자는 모양과 크기가 일정하지 않아서
인쇄상태가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 처음 만들었을 때 완벽할 순
없는 법입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금속활자 인쇄술이 고도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세종 때 만들어진 ‘갑인자’는 20여 만개의
대자(大字)와 소자(小字)로, 기존의 금속활자보다 훨씬 더 글자의 모양이 바
르고 글자간의 간격도 일정합니다. 가히 우리나라 금속활자의 백미라 할
만합니다. 당시 활자를 만든 사람들이 천문기기를 제작하는 과학자들이었
다고 하니, 활자 모양이 정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그 이
후로도 여러 왕 때에 다양한 필체의 모양대로 다양한 활자를 만들어서 실
용성을 높여 갔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기록문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발달된 인쇄술을
통해 수준 높은 문화를 풍미하고 삶의 질을 한층 높이고자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체력은 국력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체력
은 기본이고 책력(冊力)이 국력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찬란한 정신이 끊어지
지 않고 우리들에게도 꽃 피워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본 기사는 『나는 박물관 간다』에서 발췌한 내용을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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