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대한사랑 14호(2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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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감』 등 몇몇 책에서 간혹 내용이 인
                        ‣그물의 가장 큰 (몸통)밧줄은 기(紀),
                                                          용되었으나, 책의 가치는 크게 주목받
                        거기서 갈라진 다른 여럿 굵은 줄을
                                                          지 못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무관
                        강(綱)이라 하는데, 본바탕이나 중심
                                                          심은 더해져, 실학자들은 “내용이 괴
                        을 기강(紀綱)이라 말할 때의 그 기
                                                          탄하여 믿을 바가 못 된다”고 폄하하
                        (紀)이다.
                                                          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전쟁의 소용돌

                        ‣기이(紀異)란 기원(紀元)·단기(檀紀)·불          이에서 많은 문화유산들이 일본으로
                        기(佛紀)·서기(西紀)... 등에서도 짐작되          건너갔는데, 그 중에 『삼국유사』도 있
                        듯이, ‘여러 왕들의 본기(本紀)를 신이            었다. 일본 당대의 실력자 도쿠가와

                        (神異)한 사연 중심으로 엮어나간다’              막부의 집안에 들어갔다가, 일본 황실
                        는 의미’이다.                          에 빌려줬다가, 도쿄제국대학 사지 총

                                                          서 편찬자는 이 책을 저본으로 해서
                        ‣기이(紀異)란, ‘우리 겨레 (당시 고려)
                                                          『삼국유사』를 펴내기도 했다.(1904년)
                        의 원줄기[기(紀)]는 신성(神聖)하고 특
                                                            우리 땅에서는 일본에 유학 가 있던
                        이(特異)하다[이(異)]’는 것을 강조하기
                                                          최남선(육당)이 『삼국유사』를 접한 벅
                        위한 ‘중간 제목’이다.
                                                                            4)
                                                          찬 희열감에 의해서  국내로 알려지
                                                          게 되었다. 1927년 출간된 잡지 <계명
                                                          18호>는 전권을 『삼국유사』 특집으로

                     4) 『삼국유사』는 20세기에 와서야 이               제작하였다. 육당(최남선)은『삼국유사』
                     땅에서 다시 빛을 보게 되고 풀이되기                 의 전문(全文)과 자신의 해제(解題)를 실

                     시작했기 때문에, 일제가 만든 ‘신조                 어 보급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어(新造語) 한자말’ 대입으로 더욱 오해                 그런데 그 당시 일상용어처럼 사용
                     (誤解)와 오독(誤讀)이 심해졌다.                  하던 한자어 우리말들은, 실상 19세기

                       13세기말, 고려 후기에 탄생한 『삼               말 서양 문물과 개념이 대거 유입되면
                     국유사』는 조선시대에는 크게 관심을                  서, 서양의 용어를 일본인 학자들이

                     얻지는 못했다. 이후 오랜 세월 『동국                한자 몇 자씩 조합하여 만든 신조어(新






                      4) 최남선이 『삼국유사』에 대한 해제(解題)를 하면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삼국유사』를 택하겠다.”고 한 것은 『삼국유사』에 대한 지나친 평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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