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 - 대한사랑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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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이하 임정) 시절 일제의 철통같은 감시를 뚫고 무려 여
섯 번이나 국경을 넘나들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운반하는 밀사로 활
약했던 ‘임정의 어머니’, ‘임정의 안주인’이다. 정정화(鄭靖和, 1900년 8월 3일
~ 1991년 11월 2일)는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충남 예산
출신으로 수원 유수(水原留守)를 지낸 정주영(鄭周永)의 2남 4녀 중 작고 예쁜
셋째 딸로 출생했다. 본명은 묘희(妙喜)이며, 아호는 심신을 갈고 닦아 가지
런히 한다는 뜻의 수당(修堂)으로 이후 임정에서 활동할 때 돌림자를 따서
정화로 이름을 바꾸었다. 죽기 전 손녀를 시집보내겠다는 조부의 고집에
떠밀려 1910년 가을 꼬마 신부가 되었다. 남편은 대한제국의 고위 관료를
지낸 동농 김가진의 아들인 동갑내기 김의한이었다.
성언 김의한과 수당 정정화 부부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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