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대한사랑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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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 평소 김원봉의 부인 박차정을 여러 차례 병문안하고, 중도 좌파에
속하는 김규식의 부인 김순애와 가깝게 지내는 등, 이념을 떠나 여러 민족
운동가들과 함께하려 애썼다. 1943년 각 정파의 여성들이 힘을 합쳐 대한
애국부인회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고 훈련부 주임을 맡아 광복군을 후원
하고 아이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행하고 국내외 한인 여성의 단결을 촉구하
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충칭의 3·1 유치원 교사로도 근무하는 등 임
정을 대표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하지만 정정화의 주된 활동 영역은 임정의 안주인이었다. 망명 이후 해방
으로 귀국하기까지 대부분을 임정 요인들의 뒷바라지에 바쳤다. 백범 김구
는 물론 석오 이동녕(李東寧), 성재 이시영(李始榮) 등 임정 요인들 가운데 선생
이 지어준 밥을 먹지 않은 분이 없었고, 임정의 가재도구 가운데 정정화의
손때가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고달픈 임정 요인들의 망명 생활은 정화가
있음으로써 위안이 되었다. 더 나아가 27년간이라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임정의 역사도 정정화가 있음으로써 가능했다.
가흥에서 정정화 가족. 김구 선생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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