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대한사랑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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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류하면서 중국어를 익히고, 신문과 잡지를 보며 세상 보는 눈을 키웠다.

                부인 정정화는 김구의 병든 아내와 노인들을 수발하는 바쁜 와중에도 책
                을 들고 역사와 국제 정세를 공부했다. 이는 시대의 흐름과 국제 정세를

                정확히 알고 제대로 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후 1935년 11월 임정 요인을 중심으로 한국국민당이 창립하

                자 부부는 함께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시작되자 임정은 중국 국민정부와 함께 이
                동을 시작하는 ‘만리장정’의 험난한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때 의한은

                임정 국무원 비서로 차리석(車利錫, 1881년~1945년 9월 9일)을 도와 국무원 살
                림을 책임지고, 아내 정정화는 임정의 안살림을 도맡다시피 했으니, 부부

                가 안팎에서 임정을 꾸려나간 셈이다. 1940년 9월 임정 및 임시의정원이
                충칭으로 이전하고, 중국 국민당 정부가 임정의 광복군 활동에 공식적으

                로 동의하자 광복군 총사령부 주계(主計)에 선임되었으며, 1943년 8월에는
                광복군 조직훈련과장을 맡았고, 1945년 6월에는 정훈처 선전 과장으로

                임명되었고 해방을 맞이하였다.

































                 대한제국 대례복 착용한 김가진 선생                중국 난징에서 정정화 가족.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왼쪽부터 남편 김의한, 정정화, 아들 김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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