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대한사랑 12월호
P. 63
2024. 12
광복 후 귀국해서는 1948년 3월 한국독립당에서 남북요인회담 추진위원회를
설치할 때, 조소앙·조완구·엄항섭·조경한·백홍균과 함께 추진위원에 선임되었고,
그해 4월 김구·조소앙·엄항섭·조완구·조일문 등과 함께 남북협상에 참석했다.
1949년 6월에는 한국독립당 독립운동 사료 조사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그러나 1949년 6월 26일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던 백범 김구가 육군 장교
안두희가 쏜 총에 맞아 쓰러졌고 이후 나라는 둘로 쪼개졌다. 이듬해 한국전쟁
이 발발하였고, 정부가 먼저 도망가 버린 서울에 그와 정화의 가족은 남았다.
9.28 서울 수복이 멀지 않던 어느 날 조소앙, 김규식 등과 함께 납북되었고, 고향
과 가족을 그리워하다 평양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임정 요인들의 수발과 간호 : 모든 활동은 독립운동이었다
스무 살, 겁 없는 여인은 나고 자란 조국을 떠났다. 도피도 안주도 아닌, 모진
비바람을 맞기 위해서다. 상하이에서 반겨주는 늙은 시아버지와 남편을 만났고
망명의 삶이 시작되었다. 정정화는 직접 앞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말없이 정성
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감시가 덜한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임정의 비밀
연락망인 연통제를 통해 국내로 잠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했으며 연통제
가 폐쇄되자 야음을 이용하여 압록강을 건너 밀사 역할을 수행했다. 사지를 넘나
들며 10여 년간 자금 모금책, 연락책으로 활동했고, 한국국민당 등에 가입하여
1차 독립자금조달 - 공적임무
2차 친정, 시댁 독립자금 조달
국내잠입
독립자금조달 3차 입국, 검문, 검거, 심문
1922년 김가진 서거
중경임정
안살림 총책 4차 친정자금, 미국행 논의. 무산
5차 친정오빠 독립자금조달
6차 민심흉흉. 마지막 입국
임정에서 정정화의 활동
61
대한사랑_12월_본문.indd 61 2024-11-26 오전 11:53:27